황상철 기자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1일 성인 오락기 비리 의혹 수사결과를 주말 직전의 금요일인 23일 오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것도 처음에는 “자료만 내겠다”고 했다. 큰 수사를 한 뒤에는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수사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게 검찰의 관행이다. 하지만 특별수사팀을 꾸려 6개월 동안 벌인 이번 수사에선 모양새가 사뭇 달랐다. 수사 성과에 ‘자신이 없다’는 표정으로 읽혔다.
수사팀은 검찰 수뇌부와 의견을 나눈 뒤 되도록 ‘조용히’ 수사결과를 발표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성인오락기 비리에 정치권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정상명 검찰총장은 “언론에 보도된 모든 의혹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검사 18명, 수사관 50명 등 100명이 넘는 수사팀을 꾸렸다. 대규모 수사인력을 투입했지만 온 나라를 도박장화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고래’(거물)를 잡지 못했다. 경품용 상품권을 도입해 사행성 게임이 만연하도록 근본원인을 제공한 정부 고위관료들은 검찰의 칼날을 비켜갔다. 그래서 떠들썩하게 수사결과를 설명하는 게 검찰로서는 민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수사결과 발표를 놓고 검찰이 보인 모습은 다소 실망스럽다.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등 이른바 거물을 처벌해야 수사에 성공했다고 여기는 검찰의 인식이 드러났다는 생각에서다. 최근 서울동부지검에서 특정인을 겨냥하며 피의자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비롯했다는 분석이 많다. 적법 절차에 따라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면 그 결과물에 떳떳해야 한다. 수사의 성패를 판단하는 잣대가 왜곡돼 있으면 무리한 수사는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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