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부주의를 노려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피해자가 져야 할 부주의에 따른 책임도 함께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26일 전기통신 사업자 정아무개(54)씨가 “공사 하도급을 주겠다고 거짓말을 해 돈을 가로챘다”며 통신관련 업체 대표이사 주아무개(48)씨를 상대로 낸 사취금 청구소송에서 “주씨가 고의로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므로 원심이 정씨에게 40%의 과실을 인정한 것은 부당하다”며 원고 일부승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정씨는 주씨로부터 “한국전력공사에서 땅속 배전설비 관련 탐사용역을 발주받아 하도급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 2003년 9~10월 공사보증금으로 2천만원을 건넸다. 정씨는 주씨가 공사를 따내지도 못하면서 돈을 돌려주지 않자 주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으나 무혐의 처분됐다. 정씨는 주씨를 상대로 민사소송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하지만 2심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부는 지난해 11월 “주씨가 용역을 수주할 능력이나 의사 없이 하도급을 주겠다고 거짓말했다”며 “제대로 확인 안 한 정씨의 과실도 있으므로 주씨는 1200만원만 돌려주라”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을 땐 법원은 배상 금액을 정할 때 이를 참작해야 하지만, 피해자의 부주의를 이용해 고의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가 피해자의 부주의를 이유로 ‘책임을 감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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