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무죄’ 원심 확정
교통사고를 낸 뒤 연락처를 남기지 않고 떠난 운전자는 모두 ‘뺑소니’로 처벌될까? 사고가 매우 가벼워 피해자를 구호해야 할 필요성이 없을 땐 ‘뺑소니’로 처벌할 수 없다.
대법원 1부(주심 고현철 대법관)는 3일, 앞 차를 들이받고 피해자와 말다툼을 벌인 뒤 사고현장을 떠나 ‘뺑소니’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도주차량)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배아무개(41)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배씨는 2005년 11월2일 밤 11시30분께 부산에서 승용차를 몰고가다 앞에서 속도방지턱을 넘으려 감속하는 이아무개씨의 승용차 뒷범퍼를 두차례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이씨 승용차 뒷범퍼의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뒷범퍼와 본체 연결 부위가 약간 어긋났다. 배씨와 이씨는 차에서 내려 서로 잘못을 탓하며 언쟁을 벌였고, 이씨가 휴대전화로 사고 신고를 하려 하자 배씨는 차를 몰고 현장을 떠났다. 배씨는 같은해 12월 ‘뺑소니’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1,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차량 피해가 크지 않고 이씨가 입은 상처도 2주 동안 치료가 필요한 요부염좌(허리통증)에 불과해 배씨가 이씨를 실제로 구호해야 할 필요성이 없었으므로 원심이 특가법 도주차량(뺑소니)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것은 옳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사고 현장이 차량 소통량이 적은 주택가이고 이씨 차의 파손 정도가 가벼워 파편이 도로에 흩어지지도 않은 점 등으로 볼 때, 배씨가 교통상의 위험을 제거할 필요도 없었으므로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도 적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변현철 대법원 공보관은 “뺑소니 여부는 도로교통에 장애를 줬는지, 피해자를 병원에 옮길 필요성이 있었는지, 가해자가 연락처를 남겼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며 “연락처를 남기지 않더라도, 피해자 구호 필요성과 도로교통 장애가 없었다면 뺑소니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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