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팀-수뇌부 의견 조율이 관건
삼성 에버랜드 사건 항소심에서도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가 선고됨에 따라, 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이건희 회장 등 나머지 피고발인에 대한 수사가 재개될지 주목된다.
검찰 수사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이 회장의 기소 여부다.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선고된 허태학·박노빈씨는 피고발인 33명 가운데 ‘표본’ 격으로 기소된 사람들이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이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씨에게 그룹 지배권을 넘기려는 의도에서 이뤄졌다는 게 법원의 판단인데, 전문경영인에 불과한 허씨 등이 이를 주도했다고 보기 어렵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에버랜드에서 이재용씨가 25.1%, 세 딸이 각각 8.4%씩 등 구체적인 지분 문제까지 이들이 결정했다고 상상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이 회장 등 그룹 핵심부의 개입 여부를 밝히는 게 검찰의 과제다. 검찰은 지난해 이학수 그룹 부회장,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 홍석현 중앙일보사 회장, 송필호 중앙일보사 사장 등 그룹 고위 관계자들을 모두 불러 조사했다. 피고발인 가운데 이 회장 소환만 남은 상태다. 수사팀에서는 “이 회장만 불러 조사하면 수사가 마무리되는 상황”이라고 말해왔다.
이로 미뤄 짐작할 수 있듯, 이 사건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 사이에는 상당한 ‘온도 차’가 있다. 검찰은 이 회장 소환 여부에 대해, 법원이 계속 선고를 미루는 상황에서 “항소심 결과를 지켜보고 소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법원을 핑계로 수사를 미뤄왔다. 최근 항소심 선고가 임박하자 ‘이 회장이 공을 들이고 있는 2014년 평창올림픽 유치 확정 전까지는 소환이 어려울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검찰은 올해 초 정기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에서 에버랜드 사건을 전담해온 이원석 검사를 수원지검에 복귀시키고, 또다른 삼성 관련 사건 중 하나인 ‘e-삼성’ 사건 담당 검사를 형사부로 발령냈다. 당시 이 검사는 증거 제출 등과 관련해 강경한 뜻을 굽히지 않아 수뇌부에 밉보였다는 말이 돌았다. 이 회장 수사를 꺼리는 수뇌부의 태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에버랜드 사건 이외에도 일련의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사건들이 어떻게 처리될지도 관심사다. 1999년 삼성에스디에스는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시중 가격의 8분의 1 수준에 이재용씨에게 넘겼으며, 2001년엔 제일기획 등 계열사들이 e-삼성 등 부실화된 인터넷회사들의 이재용씨 지분을 비싼 값에 사줘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수사팀 관계자는 “가급적이면 삼성 관련 사건은 한꺼번에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