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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할아버지 공적 제대로 인정때까지 저는 죄인으로 살 수 밖에 없어요”

등록 2007-06-14 20:48

류훈상선생 손녀 형선씨 20년째  ‘독립운동 인정자료 수집 전쟁’
류훈상선생 손녀 형선씨 20년째 ‘독립운동 인정자료 수집 전쟁’
류훈상선생 손녀 형선씨 20년째 ‘독립운동 인정자료 수집 전쟁’
3·1운동…간도국민회…
숱한 활동기록 내놔도 “보류”
‘공훈심사 엉망’ 기사에 허탈
공적 찔끔 인정에 서류 또 뒤적

“어렸을 적 함북 성진 땅의 추운 겨울, 할아버지가 누빈 솜옷의 겉감을 떼어내고 훤히 비칠만치 얇은 창호지에 무언가를 써 넣고 다시 누벼 먼 길 떠나시던 게 독립운동하는 것인 줄도 모른 채 수십년을 살았어요.”

류형선(83)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공적이 제대로 인정받을 때까지 나는 죄인으로 지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망막손상으로 눈 수술을 받았지만, 류 할머니는 오늘도 돋보기 안경을 쓰고 손에는 커다란 돋보기를 든다. 정부가 숨겨진 항일 독립운동가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총무처 자료실로 향한 게 1980년대 중반이니, 자료를 뒤지는 일은 20년이 넘었다.

일본어 자료를 뒤지는 류 할머니를 공무원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2년 동안 일본 유학을 다녀온 류 할머니에게 일본어와 한자 번역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부 류훈상 선생이 3·1운동 당시 함북 성진에서 천도교 종리원장으로서 운동을 주도했다는 자료를 찾아냈다. 3년이 넘는 준비 끝에 1989년 직접 보훈처에 공적자료를 냈다.

하지만 3년이 지나 ‘보류’ 통지를 받았다. 해방 뒤 행적을 알 수 없으며, 사망 시기도 불분명하다는 이유였다. 허탈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엔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도서관 문헌을 샅샅이 뒤져 할아버지에 관한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찾았죠.” 류 할머니는 결국 조부가 독립운동단체인 간도국민회에서 활동한 기록까지 추가로 찾아냈다.

그러나 보훈처 심사과의 문은 이번에도 열리지 않았다. 간도국민회 사건 2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류 할머니는 “할아버지는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옥고를 치렀을 뿐아니라 모진 고문도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류 할머니는 다시 국사편찬위원회, 법무부, 정부기록보존소, 천도교 자료실 등 자료가 있을 만한 모든 곳을 누볐다.

새로운 자료를 첨부해 해마다 공훈심사 신청을 했다. 하지만 2003년까지 ‘수형 결과 및 사망 시기 등 미상’이라는 똑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그 사이 유혹도 있었다. 공무원들에게 점심값만 찔러주면 금방 해결된다는 ‘브로커’도 찾아왔다. 할머니는 “나라 위해 싸웠던 일을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어 딱 잘라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2004년. 국정감사에서 공훈심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국회의원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꿈쩍하지 않던 보훈처의 문이 ‘허망하게’ 열렸다. 이듬해 할아버지에게 건국포장이 내려진 것이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간도국민회 활동 등 공적의 상당 부분이 누락됐던 것이다. 류 할머니는 항의의 뜻으로 건국포장을 거부했고, 다시 자료를 모아 보훈처를 찾기 시작했다. 보훈처에서는 ‘훈격 재심사는 하지 않는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외국에서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공적은 정부가 나서서 찾아준다던데….” 시력과 기력이 부쩍 쇠해진 류 할머니는 얼마나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그래도 포기는 없다. 오늘도 20년 동안 쌓아온 서류더미를 뒤지는 류 할머니. 그의 마지막 소원은 공정한 ‘재심사’로 할아버지의 온전한 공로를 역사에 새겨넣는 것 뿐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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