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수술받은 파키스탄인 이직지연은 중기중앙회등 책임” 판결도
파키스탄인 ㅋ(28)씨 등 5명은 2005년 9월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오며 “연수 기간에 한국 음식을 먹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다. 이주노동자가 업체에서 제공하는 한국 음식을 먹지 못할 경우 업체가 식대를 따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배정받은 ㅌ산업은 한국 음식만 줬다. 견디다 못한 ㅋ씨 등은 한 달 뒤 “파키스탄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먹을 수 없는 돼지고기를 포함해 문화적으로도 먹기 힘든 한국 음식만 먹을 수는 없으니 식대를 따로 달라”고 회사 쪽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ㅋ씨 등은 “다른 회사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연수 추천기관인 중소기업중앙회는 근무처를 바꿔주지 않았고, 오히려 같은 해 11월 이들을 출국조처했다. 인력 송출업체가 탑승권을 준비하지 못해 며칠 국내에 머물던 이들은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를 찾았다. ㅋ씨 등은 인권센터의 도움으로 출국이 취소됐고, 일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다른 업체로 가기까지는 짧게는 두 달, 길게는 넉 달이 걸렸다. 이 기간에는 법령에 따라 중소기업중앙회가 숙식비 등을 줘야 하지만, 중소기업중앙회는 이조차 주지 않았다. ㅋ씨 등은 지난해 1월 중소기업중앙회와 파키스탄 인력송출업체 ㄴ사 대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8단독 정완 판사는 “입국 전에 한국 음식을 먹겠다는 취지로 서약을 했다고 할지라도, 종교적·문화적 차이로 연수업체가 주는 음식을 도저히 먹을 수 없는데도 이를 계속 강요하는 것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며 “ㅋ씨 등 5명에게 3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또 파키스탄인 ㅈ(28)씨가 “허리를 다쳤는데 오히려 허리에 많은 부담을 줄 수 있는 연수업체로 배정해 질병을 악화시켰고, 7개월 동안 새 근무처를 배정하지도 않은 채 숙식비도 주지 않았다”며 중소기업중앙회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 판사는 2004년 11월 입국 8개월 만에 ‘치열’과 ‘옴’을 앓다 수술까지 받았으나 수술 두 달 뒤에야 일자리를 옮길 수 있었던 파키스탄인 ㅁ(29)씨한테도 위자료 400만원을 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산업연수생이 중소기업중앙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손해배상을 인정받은 첫 사례다. 산업연수를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질병이나 열악한 노동조건, 종교적 이유 등으로 연수업체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는데도 적절히 조처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정 판사는 판결문에서 “중소기업중앙회는 산업연수생의 권익을 보호하고 송출기관의 업무를 지도·감독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며 “적절한 연수업체를 신속히 재배정하고 숙박비 등을 제공해 생존권을 보장해줘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고 말했다.
정정훈 변호사는 “산업연수생 제도는 없어졌지만, 이 판결은 현재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고용허가제의 ‘2개월 안 적절한 업체 배정’ 문제와 연관지어 볼 때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정정훈 변호사는 “산업연수생 제도는 없어졌지만, 이 판결은 현재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고용허가제의 ‘2개월 안 적절한 업체 배정’ 문제와 연관지어 볼 때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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