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됐다 살해된 배형규 목사의 주검이 30일 오후 인천공항을 거쳐 경기 안양샘병원 영안실에 안치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가족들 차마 공항에 못나가 “배목사도 원치 않을 것”
“피랍자 전원 석방 때까지 장례 안 치르겠다” 울먹
“피랍자 전원 석방 때까지 장례 안 치르겠다” 울먹
생전에 스스로 ‘소망의 땅’이라고 일렀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숨진 배형규(42·경기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목사의 주검이 30일 오후 4시50분께 에미레이트 항공(EK322)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봉사대원들과 함께 떠났지만 17일 만에 주검으로 홀로 돌아온 이날 날씨는 몹시 무더웠다.
길고 험한 여정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그의 주검은 유가족 대리인이자 같은 교회 장로인 안양샘병원 박상은 원장과 교회 대표 방용균 목사 등이 나와 거뒀다. 취재진 30여명도 배 목사의 주검이 공항에서 나오는 것을 지켜봤다.
같은 시각 배 목사의 주검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샘물교회에도 전해졌다. 배 목사의 형 신규(45)씨는 “인솔자로서 봉사대원들과 함께 와야 하는데 혼자 오는 것은 고인도 원치 않을 것 같아 공항에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유가족들은 피랍자 22명의 가족들과 함께 남은 인질들의 무사귀환을 기도했다. 특히 부인 김희연(36)씨는 탈레반이 제시한 협상 시한 때문에 불안에 떨며 울먹이는 피랍자 가족들의 손을 잡고 “용기를 내라”며 위로했다. 운구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아프간에서 외롭고 처참하게 스러져갔을 배 목사와 남겨진 인질들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족들은 탈레반이 이날 최종 협상 시한을 오후 4시30분, 8시30분으로 제시하며 인질 살해 위협 소식 등으로 애간장을 태웠다. 오후 6시 조금 넘어 외교통상부로부터 석방 협상 결렬 소식이 전해 들은 가족들은 아연실색했다. 일부 가족들은 얼굴을 가린 채 흐느꼈고, 한 가족은 울먹이며 교회 밖으로 뛰쳐나가는 등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는 모습이었다. 이후 밤 10시30분께 협상 시한이 또다시 이틀 연장됐다는 소식이 전달되자 조금 안도한 표정이었다. 가족 모임 차성민 대표는 “오늘은 특히 피말리는 하루였다”고 말했다.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마흔두 번째 생일인 25일 살해된 배 목사는 피살 직후 아프간 경찰에게 발견됐다. 이후 배 목사 주검은 아프간 카불 동북쪽 50㎞ 지점에 있는 바그람 기지 안 한국군 동의·다산 부대에 지난 26일부터 안치돼 있었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피랍자 전원 석방 때까지 아무런 절차를 밟지 말 것”을 정부에 간곡히 요청해 운구가 미뤄져 왔다. 하지만 현지 시설이 오랜 시간 주검을 안치하기 어렵다는 정부 쪽의 설득에 따라 이날 운구가 이뤄졌다.
배 목사 주검은 이날 저녁 안양샘병원에 안치됐다. 유가족들은 “피랍자 모두가 안전하게 돌아오면 장례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배 목사 주검은 인질 사태 해결 때까지 안양샘병원에 계속 안치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배 목사 주검은 환자 치료와 해부학 실습용으로 병원에 기증될 예정이다.
한편, 수원지검 공안부 김병현 검사와 마약조직범죄 수사부 신응석 검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검시의, 경찰 등이 입회한 가운데 배 목사 주검을 검시했다. 검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가족 동의를 받아 주검을 부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상은 샘병원장은 “현지에서 넘겨받은 사망진단서에 ‘머리에 총상을 입어 사망했다’고 써 있었다”면서도 다른 검시 결과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또 고문 등 다른 흔적에 대해서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배 목사 주검은 바그람 기지에서 한국군 군의관 등이 확인했으나 정확한 사인과 주검 상태가 공개되지 않아 ‘고문 뒤 총살설’ 등이 나돌았다.
인천 성남/김기성 하어영 최원형기자 player1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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