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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광복 62돌 되돌아보는 우리] ‘가해자로서 우리’ 성찰을

등록 2007-08-14 20:37수정 2007-08-14 22:47

광복 62돌을 하루 앞둔 14일 밤 서울시가 시청 건물 외벽에 지름 25㎝ 크기의 모형 무궁화 3만4천여 송이를 설치해 만든 커다란 무궁화 모자이크 그림에 불을 밝혀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강창광 기자 <A href="mailto:chang@hani.co.kr">chang@hani.co.kr</A>
광복 62돌을 하루 앞둔 14일 밤 서울시가 시청 건물 외벽에 지름 25㎝ 크기의 모형 무궁화 3만4천여 송이를 설치해 만든 커다란 무궁화 모자이크 그림에 불을 밝혀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광복 62돌 되돌아보는 우리
한국 ‘경제 부국’ 되며 파병·기업 국외진출 늘어
현지 노동자에 횡포 등 다른나라·민족에 상처
“제국주의적 가해자…서구 열강 잘못 극복해야”

광복 62돌을 맞아 올해에도 어김없이 일제의 만행을 기억하고 일본의 재일동포 탄압을 규탄하는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과거 피해자로서의 우리’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반세기 넘는 세월 속에 어느덧 힘있는 나라가 되어 다른 나라와 민족에 상처를 주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광복절의 현재적 의미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국가=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는 외국에 군대를 보내는 위치가 되면서, 현지인들로부터 적대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파병부대 복무 경험자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파병 한국군에 대한 인식은 미군과 다르지 않다”며 “의료지원 등 좋은 일을 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점령군’”이라고 말했다. 평화재단 유정길 기획실장도 “이라크에 갔을 때, 현지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도우러 온 게 아니라 미국을 도우러 오지 않았느냐’는 적대적인 반응을 많이 접했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봉사활동단을 납치한 탈레반의 대변인 유수프 아마디는 “납치된 사람들은 다국적군과 아프간 정부의 편이기 때문에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고 말한 바 있다. 2004년 이라크에서 김선일씨를 납치·살해했던 무장단체는 한국인에게 보내는 영상 성명을 통해 “당신들의 군대는 이라크인들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저주받을 미국을 위해 왔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라크(1267명), 아프가니스탄(210명), 레바논(353명) 등지에 모두 1872명을 파병한 상태다. 참여연대 평화군축팀 박은정 팀장은 “우리나라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은 제국주의 지배와 외세의 간섭 등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지만, 정작 ‘점령군’인 우리는 그 유사성을 잘 모르고 있다”며 “현지 사람들의 상처와 슬픔, 고통이 얼마나 더 갈지 모르니 전쟁을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 기업=1990년 필리핀 가비테 수출자유지역에 공장을 설립해 월마트 등에 의류를 납품해 온 청원패션(대표이사 김용렬)의 현지 노동자들은 1년이 넘도록 파업 중이다.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는 “2004년 이 회사에 노동조합이 설립됐는데, 노조가 합법적으로 결성됐다는 필리핀 노동부와 노동법원의 유권해석에도 불구하고 회사 쪽은 1년이 넘도록 단체협상에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지 노동자지원센터(WAC)는 “회사 쪽이 고용한 용역경비업체와 자유무역청 소속 경찰들이 노동자들을 해산시키는 등 노동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자지원센터는 지난 6월10일에도 무장 괴한이 파업 노조원 7명을 폭행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지난 11일 월마트, 폴로 랄프 로렌 등 8개 미국 업체들이 필리핀의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에게 노조에 대한 불법 폭력 근절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현지 청원패션 노동자 대표 등 4명은 오는 31일 한국을 방문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청원패션을 산업자원부에 제소할 예정이다.

2002년 9월 스리랑카에서는 800명의 현지 노동자를 고용했던 한 가방생산업체가 하룻밤 사이 정상적인 청산절차를 거치지도 않은 채 귀국해버린 일도 있었다. 이 회사 노동자들은 11개월치 연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해 농성을 벌였으나 끝내 받아낼 수 없었다.

국제민주연대 최미경 사무국장은 “이처럼 한국 기업들이 노동자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동남아나 중남미에 진출해 노동권 탄압 등 인권 유린을 하는 사례가 많다”며 “제3세계 정부가 기간사업을 벌이기 위해 원래 살던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등 인권침해적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외국 업체들과 달리 한국 업체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의식=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의식은 이주노동자 문제, 인신매매성 국제결혼, 동남아 섹스관광 등을 통해 숱하게 지적돼 왔음에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베트남 여성을 속여 씨받이로 이용하는 일이 벌어질 정도다.(<한겨레> 7월6일치 8면)

파업 중인 필리핀 청원패션 노조원들이 회사 정문 앞에서 노동조합을 인정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필리핀 노동지원센터(WAC) 제공
파업 중인 필리핀 청원패션 노조원들이 회사 정문 앞에서 노동조합을 인정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필리핀 노동지원센터(WAC) 제공
대학생 유아무개(22)씨는 “친구가 동남아 국가 여성을 보고 아무런 근거 없이 ‘결혼하러 한국에 들어왔나 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동남아 나라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외모를 놀릴 때 흔히 “동남아 사람 같다”고 말하는 데서도 차별적 의식이 엿보인다.

우월 의식도 크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유아무개(31)씨는 “우리 회사의 한 상무는 동남아 국가의 장관 정도는 아무 때나 찾아가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임지현 한양대 교수(사학)는 “파병이나 국외 진출 기업의 횡포 등 국가나 기업 차원의 제국주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의식 속에 숨어 있는 제국주의”라고 말했다.

■ 평가=서울대 박지향 교수(서양사)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서 국가 경계를 넘어 확장을 했고, 이에 따라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외국인노동자센터 이철승 목사는 “한국도 과거에 일본과 서구 열강에 식민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고 제국주의적 요소의 피해 당사자였는데도, 지금은 아시아에서 제국주의적 가해자”라며 “서구 열강이 저질렀던 잘못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우리는 역사의 희생자’라는 강한 피해자 의식이 ‘강한 국가’에 대한 욕망을 일으켰고, 그 욕망이 점차 아류 또는 준제국주의적인 가해자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광복절이 ‘다시는 제국주의의 희생자가 나와선 안 된다’는 인식으로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유희곤 인턴기자(연세대 사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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