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불법 택시 호객행위 현장
순번 정해 신호 보내며 외국인에 접근
순번 정해 신호 보내며 외국인에 접근
지난 14일 오후 6시30분께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외국 항공편 탑승객들이 주로 빠져나오는 이(E)·에프(F) 출구 앞으로 환영객들이 몰렸다. 국내 항공편이 주로 이용하는 에이(A)·비(B) 출구에 견줘 외국인이 훨씬 많이 눈에 띄었다. F 출구로 나오는 외국인이 입국장 풍경에 낯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곧바로 짧은 머리에 양복 바지와 면 티셔츠 차림의 40대 남자들이 따라붙었다. “어디까지 가느냐”, “나는 택시기사다”라고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었다. 이들이 서로 신호를 보내 외국인에게 접근하는 순번을 정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기자가 112에 신고를 하자, 10분쯤 지나 ‘사복 경찰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흥정을 하는 외국인과 한국인 호객꾼에게 “폴리스!”라고 말하며 다가간 뒤 호객꾼을 데리고 공항경찰대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호객꾼은 공항경찰대로 통하는 출입문으로 들어간 지 5분이 채 안 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바깥으로 나왔다. 이어 자리를 E 출구 쪽으로 옮겨 다시 호객행위를 시작했다. 112에 다시 신고를 했다. 112로부터 연락을 받은 공항경찰대에서 기자의 전화로 연락이 왔는데, 대뜸 “혹시 택시 운전 하시냐”고 물었다. “신원을 왜 확인하려고 하느냐”고 되묻자 전화는 끊겼다. 그러고는 ‘사복 경찰로 보이는 사람’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공항건물 밖 횡단보도 건너편에는 ‘공항시설 내 불법행위 집중단속 실시’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6월29일부터 불법행위를 집중 단속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펼침막 앞에는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과 외국인을 유인하는 호객꾼, 호객행위를 단속하러 나온 인천공항공사 단속반원들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외국인들에게 버젓이 호객행위를 하는 이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저녁 8시20분께, 필리핀 마닐라에서 온 승객들이 F 출구로 나오기 시작했다. “택시가 필요하냐”, “요금은 미터기로 계산한다” 등 유창한 영어로 호객행위가 시작됐다. 한 호객꾼이 동남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외국인의 짐수레를 대신 끌고 움직였다. 이 외국인은 “경기도”, “화성” 등 서툰 한국말로 목적지를 설명했고, 호객꾼은 “문제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호객꾼이 택시 승강장과 다른 방향으로 짐을 끌고 가자 외국인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택시는 어디 있느냐”, “저쪽이 승강장인데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호객꾼은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막무가내로 짐수레를 끌었다. 공항 안 단기주차장에 이른 호객꾼은 갑자기 영어 대신 한국말을 쓰기 시작했다. 반말이었다. “빨리 안 와? 너, 나 아니면 아무 데도 못 가!”
결국 외국인은 택시에 올랐다. 택시는 도로 사정이 좋은 곳에서는 시속 150㎞를 넘나들며 달렸다. 1시간30분쯤 뒤 도착한 곳은 경기 화성에 자리잡은 한 금형공장. 무슨 이유에서인지, 차에서 외국인은 한동안 내리지 않았다. 5분여가 지나자, 택시는 울상이 된 외국인을 남겨둔 채 다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자신의 이름이 ‘마르’라는 이 필리핀 사람은 “택시비로 18만원을 줬다”며 “출국할 때는 여기에서 인천공항까지 7만원밖에 안 나왔다”고 말했다. 국내에 온 지 1년 만에 처음 휴가를 얻어 고향에 다녀왔다는 그는 서툰 한국말로 화풀이를 했다. “나쁜 놈들!” 인천국제공항·화성/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