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국사학과 정옥자 교수
“취업 예비학교 전락…인재양성 본연의 구실 못해
서울대 폐지론 나온 이유 생각해봐야”
서울대 폐지론 나온 이유 생각해봐야”
“등 따습고 배부르면 비판의식 절로 없어져”
“등 따습고 배부르면 비판의식은 저절로 없어지는 법이에요.”
정년을 맞아 서울대를 떠나는 원로 역사학자가 서울대를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정옥자(65) 국사학과 교수는 31일 서울대에서 열린 교수 퇴임식에서 정년교수 대표 인사를 통해 “우리나라 국립대학은 고려시대까지 소급할 만큼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건만, 서울대가 그 역사를 계승하고 있지 못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앞선다”며 “서울대 폐지론이 나오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우선 대학이 ‘취업 예비학교’로 전락한 풍토 속에서 서울대도 인재 양성이라는 본연의 구실을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머리만 좋고 의식이 트이지 못한 도구적 지식인을 확대재생산하는 서울대 메커니즘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뜨거운 가슴 없이 차가운 머리만 가진 지식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감성과 이성이 잘 조화된 균형 잡힌 인재를 키우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군사정권의 독재에 대학이 저항하고 민주화 운동을 벌인 것도 결국 대학의 비판의식의 발로였다면, 현재나 미래에도 대학은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갖되 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이 기금 조성이나 시설 확충, 외부의 평가순위 등을 성과로 내세우는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정 교수는 “대학이 발전하기 위해 물적 기초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면 대학의 체통이 무너지고 속물화될까 우려된다”며 “대학의 물량화가 비판의식의 마비 현상을 몰고 온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자신의 학문과 인격을 닦아 남을 다스린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선비정신이 현재 서울대인에게도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기’는 지식의 전달이라는 반쪽 수기가 아닌, 사람다운 사람 만들기에 좀더 비중을 두는 전인교육의 수기를 해야 한다”며 “‘치인’도 남을 지배한다는 뜻이 아니고, 혜택과 누림의 자세에서 벗어나 엘리트의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해 일깨워주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1980년대 민주화 서명운동에 참여하면서 비판의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굳혔다”며 “젊은 교수들에게 비판의식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평소 생각을 정리해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1981년 서울대에 임용된 정 교수는 조선 후기 문화사, 사상사, 지성사 등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남겼으며, 규장각 관장을 지낸 바 있다. 80년대에는 독재 정권에 저항한 학생들을 따뜻하게 돌봐 ‘운동권의 어머니’로 불리기도 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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