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가정법률상담소 심포지엄서 ‘입법화’ 제안
“양육비 청구 위해 필요” 의견
“이혼 회피 수단 악용” 반대
“또다른 제약될라” 신중론도 이혜숙(가명)씨는 남편을 가정폭력 혐의로 고소했다가 남편의 협박에 고소를 취하했다. 그뒤 집에서 쫓겨나와 친정에서 생활하는데, 생활비가 없어 아이들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다. 김영미(가명)씨의 경우 남편이 8~9년째 집을 나가 다른 여자와 동거중이다. 김씨는 아이 2명을 돌보며 일을 해 생계를 꾸린다. 남편한테 양육비를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는다. 이혼하자고 해도 남편은 묵묵부답이다. 이씨와 김씨의 경우, 남편에게 이혼 전 별거 상태에서 양육비 등의 청구가 가능할까?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김진영 상담위원은 “혼인의 의무 가운데 하나가 ‘부양 의무’인만큼 비용을 청구하는 소송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증빙절차가 번거로운데다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려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별거때 양육비에 관련된 사항은 결과적으로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 되어 버린 실정이라는 것이다. 부부간 재산분할은 이혼해야만 가능한 게 현재 한국의 법제이다. 이러한 별거는 대개 경제력이 없는 별거 여성에게 큰 타격을 준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 7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상담소를 찾은 남녀 성인 8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별거 경험자 중 아내가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가 74.4%이나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은 경우는 39.1%에 불과했다. 그나마 지속적으로 받은 사례는 15.5%뿐이었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을 위해 ‘별거제도’를 신설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별거제’를 입법화하면 별거와 동시에 경제적 능력이 있는 쪽에서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하게 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지난 9일 ‘별거제도 도입을 위한 심포지엄’을 열고 이와 같은 별거제도의 입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화숙 교수(연세대 법학)는 발제를 통해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은 이혼청구가 어려워, 이혼하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재결합할 수도 없는 경우 별거를 선택하게 된다”면서 “이런 별거 부부도 이혼 부부와 마찬가지로 재산분할청구와 자녀양육 결정, 양육비 지급 등을 법원의 판단에 따라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조계와 여성계에서 이견도 만만찮다. 우선 최은주 서울 가정법원 판사는 심포지엄에서 “최근 판례를 보면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이혼을 청구하더라도, 더이상 결혼생활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혼을 허용하고 있다”며 “대부분 별거는 이혼때 발생할 사회적 이목, 경제적 대책을 우려해서이거나 자녀의 혼인을 기다리는 등 이혼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 판사는 “따라서 기존 이혼제도와 별개로 별거제도를 법제화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여성단체들도 신중한 분위기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의 김홍미리 가족담당은 <한겨레>의 물음에 “이혼을 금기시하는 사회분위기가 더욱 확산된다면 별거제를 도입하더라도 오히려 이혼 전에 긴 별거기간을 거치게 되는 등 당사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들은 그동안 결혼과 이혼 모두에 있어서 여성에게 불필요한 괴로움을 주지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 맥락에서 별거제도가 여성권익을 보호한다는 뜻과 달리, 자칫 여성에 대한 또다른 제약이 될지 모른다는 점을 이들은 걱정한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이혼 회피 수단 악용” 반대
“또다른 제약될라” 신중론도 이혜숙(가명)씨는 남편을 가정폭력 혐의로 고소했다가 남편의 협박에 고소를 취하했다. 그뒤 집에서 쫓겨나와 친정에서 생활하는데, 생활비가 없어 아이들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다. 김영미(가명)씨의 경우 남편이 8~9년째 집을 나가 다른 여자와 동거중이다. 김씨는 아이 2명을 돌보며 일을 해 생계를 꾸린다. 남편한테 양육비를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는다. 이혼하자고 해도 남편은 묵묵부답이다. 이씨와 김씨의 경우, 남편에게 이혼 전 별거 상태에서 양육비 등의 청구가 가능할까?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김진영 상담위원은 “혼인의 의무 가운데 하나가 ‘부양 의무’인만큼 비용을 청구하는 소송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증빙절차가 번거로운데다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려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별거때 양육비에 관련된 사항은 결과적으로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 되어 버린 실정이라는 것이다. 부부간 재산분할은 이혼해야만 가능한 게 현재 한국의 법제이다. 이러한 별거는 대개 경제력이 없는 별거 여성에게 큰 타격을 준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 7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상담소를 찾은 남녀 성인 8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별거 경험자 중 아내가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가 74.4%이나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은 경우는 39.1%에 불과했다. 그나마 지속적으로 받은 사례는 15.5%뿐이었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을 위해 ‘별거제도’를 신설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별거제’를 입법화하면 별거와 동시에 경제적 능력이 있는 쪽에서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하게 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지난 9일 ‘별거제도 도입을 위한 심포지엄’을 열고 이와 같은 별거제도의 입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화숙 교수(연세대 법학)는 발제를 통해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은 이혼청구가 어려워, 이혼하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재결합할 수도 없는 경우 별거를 선택하게 된다”면서 “이런 별거 부부도 이혼 부부와 마찬가지로 재산분할청구와 자녀양육 결정, 양육비 지급 등을 법원의 판단에 따라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조계와 여성계에서 이견도 만만찮다. 우선 최은주 서울 가정법원 판사는 심포지엄에서 “최근 판례를 보면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이혼을 청구하더라도, 더이상 결혼생활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혼을 허용하고 있다”며 “대부분 별거는 이혼때 발생할 사회적 이목, 경제적 대책을 우려해서이거나 자녀의 혼인을 기다리는 등 이혼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 판사는 “따라서 기존 이혼제도와 별개로 별거제도를 법제화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여성단체들도 신중한 분위기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의 김홍미리 가족담당은 <한겨레>의 물음에 “이혼을 금기시하는 사회분위기가 더욱 확산된다면 별거제를 도입하더라도 오히려 이혼 전에 긴 별거기간을 거치게 되는 등 당사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들은 그동안 결혼과 이혼 모두에 있어서 여성에게 불필요한 괴로움을 주지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 맥락에서 별거제도가 여성권익을 보호한다는 뜻과 달리, 자칫 여성에 대한 또다른 제약이 될지 모른다는 점을 이들은 걱정한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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