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도 분식회계 알면서도 향응받고 눈감아
김용철 변호사가 26일 폭로한 지난 2000년 일부 삼성 계열사들의 회계 분식 의혹은 충격적이다. 삼성중공업 2조원, 삼성물산 2조원, 삼성항공 1조6천억원, 삼성엔지니어링 1조원, 제일모직 6천억원 등 각 계열사마다 분식 규모가 엄청난데다 수법 또한 ‘일류 삼성’이라는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게 단순하고 무모하다.
김 변호사가 이날 공개한 분식 수법은 아주 구체적이다. 그는 당시 구조조정본부 재무팀 임원들이 몇몇 계열사를 나눠 맡았는데, 자신이 직접 이들 기업을 담당하면서 분기별로 손익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중공업의 경우 “분식 규모가 너무 커서 거제 앞바다에 배가 없는데도 건조 중인 배가 수십 척 떠 있는 것으로 꾸미는 등 무모하게 처리했다”며 “감리회계법인인 ㅅ회계법인은 이를 알면서도 향응을 제공받고 사실과 다르게 ‘적정 의견’을 내줬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 설명에 따르면, 계열사들의 부실은 당시 이익을 많이 내던 삼성전자의 지원성 거래 등을 통해 분식회계 처리됐다. 예를 들어 삼성항공이 삼성전자에 부품을 납품하면, 전자는 제값보다 높게 쳐주는 방식으로 한 해에만 400억원 정도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2∼3년 동안에는 대우 등 적잖은 기업들이 악화된 영업 실적과 부실 자산을 숨기기 위해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가 적발된 바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한 회계사는 “당시 회사채 발행이 가능한 회사들은 삼성그룹의 계열사들뿐이었다”며 “삼성 계열사들이 회사채 발행을 위해 무리한 분식회계를 저질렀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 또 “외환위기 당시 회사 주식이 액면가 이하로 가면 자금 관리가 안 돼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며 “정상화 방안으로 대충 10년 정도 계획을 잡았는데 지금은 대부분 정리됐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그가 밝힌 내용이 2000년 한 해에 처리된 것인지 누적치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은 분식회계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다. 삼성그룹은 “2000년 삼성물산의 연간 매출이 40조6400억원인 것을 제외하면 삼성중공업 3조5800억원, 삼성항공 1조4200억원, 삼성엔지니어링은 9800억원 수준”이라며 “김 변호사의 주장대로라면 분식 규모가 연간 매출을 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상식 밖의 얘기”라고 밝혔다. 지난 1998년부터 10년째 삼성중공업의 감사를 담당해온 ㅅ회계법인도 분식회계 의혹을 부인하면서 “김 변호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한편 손해배상 소송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