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노현웅 기자가 12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해수욕장에서 기름에 오염된 모래를 자루에 퍼담아 나르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현장] 기자가 함께 한 방제현장
해안에 덮친 기름띠에 전국에서 모인 자원봉사의 물결이 맞서고 있다. 차가운 겨울바다 바람이 부는데도, 방제복 안과 장화 속은 땀으로 흥건하다. <한겨레> 기자들이 12일 ‘노고’와 ‘보람’, ‘근심’ 속에 하루가 훌쩍 가는 방제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안면도 앞바다 검은 수면
“꽃지까지 덮칠라” 어민 한숨 ■ 의항해수욕장=오전 9시께 소원면 의항해수욕장에 도착해 부직포로 만든 방제복을 입고 무릎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었다. 지퍼를 목까지 올리자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긴다. 기름이 스민 모래를 삽으로 떠 자루에 담고 있던 바닷가로 다가서자,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마대 들고 와서 벌리슈”라는 말이 돌아온다. 어차피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자루는 모자라고 퍼담아야 할 기름 모래는 끝이 없었다. 정해진 양 이상으로 모래를 담자 바로 “거기 모래 너무 많이 담지 말아요!”라는 질책이 날아왔다. 곁에 다가온 자원봉사자 박희규(31)씨는 “마음은 이해하는데 진짜 작업은 조금 뒤에 시작”이라며 “어제 너무 많이 담은 모래자루를 나르다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준비된 마대가 줄어들수록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드디어 30여명이 2줄로 늘어서 모래 자루를 옆으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무게 30~40㎏의 모래주머니를 위로 던지자니 곧 땀이 맺히고 이내 하늘이 노랗다. 모래자루 500여개를 길가에 가지런히 쌓자, 점심시간이었다. 육개장에 찐밥, 김치가 전부인 점심을 다들 모래 소리 서걱거리며 맛있게도 먹는다. ‘봉사의 보람’은 모두에게 그 무엇보다도 ‘맛난 반찬’이었다.
[현장] 충남 태안 나치도 해상…기름 유출 사고 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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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도 해상=백사장항 선착장에 흡착포가 150상자나 쌓여 있었다. 아침 8시30분께 “안면도 앞바다까지 내려왔다는 기름 덩어리들 다 없애보자”며 8t짜리 어선 ‘이화7호’에 몸을 실었다. 안면도를 지키겠다고 나선 지역 어민 90여명이 탄 어선 27척이 늘어서 수평선을 향했다.
바다로 나선 지 40여분이 지나자 푸른 바다 위에 검은 반점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분여나 흘렀을까? 안면도에서 10마일(16km) 가량 떨어진 나치도 근처에 다다르자 바다는 물 반, 기름 반이었다. “하루새 여기까지 내려왔네…” 이화호 선장 이재춘(47)씨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태양호 선원 김종현(54)씨는 “겨울 바다가 조용하지 않은데 이렇게 호수처럼 잔잔한 걸 보니 곧 큰 바람이 불 것 같다”며 얼굴이 굳어졌다. 안면도 앞바다에서 배를 탄지 29년째라는 이씨는 “내일 바람이 세게 불면 꽃지해수욕장까지 떠내려올 확률이 99%”라고 말했다.
기자가 던진 흡착포가 무기력하게 바다 위를 둥둥 떠다녔다. 배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던져놓은 흡착포가 기름을 붙잡아주기를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오후 2시께부터 갈고리가 달린 장대로 흡착포를 거두기 시작했다. 까맣고 쪼글쪼글해진 흡착포를 보면 보물을 발견한 양 반가웠다. 기름 조각이 덕지덕지 붙은 흡착포를 건네자, 어민 김명남(49)씨는 “원래 안면도의 ‘안’ 자는 편안할 안 자인데, 곧 이름을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흡착포를 거두는 어민들은 말이 없었다. 그들의 근심은 깊었고, 이날 하루 바다는 고요했다.
태안/노현웅 송경화 기자 goloke@hani.co.kr
“꽃지까지 덮칠라” 어민 한숨 ■ 의항해수욕장=오전 9시께 소원면 의항해수욕장에 도착해 부직포로 만든 방제복을 입고 무릎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었다. 지퍼를 목까지 올리자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긴다. 기름이 스민 모래를 삽으로 떠 자루에 담고 있던 바닷가로 다가서자,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마대 들고 와서 벌리슈”라는 말이 돌아온다. 어차피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자루는 모자라고 퍼담아야 할 기름 모래는 끝이 없었다. 정해진 양 이상으로 모래를 담자 바로 “거기 모래 너무 많이 담지 말아요!”라는 질책이 날아왔다. 곁에 다가온 자원봉사자 박희규(31)씨는 “마음은 이해하는데 진짜 작업은 조금 뒤에 시작”이라며 “어제 너무 많이 담은 모래자루를 나르다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준비된 마대가 줄어들수록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드디어 30여명이 2줄로 늘어서 모래 자루를 옆으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무게 30~40㎏의 모래주머니를 위로 던지자니 곧 땀이 맺히고 이내 하늘이 노랗다. 모래자루 500여개를 길가에 가지런히 쌓자, 점심시간이었다. 육개장에 찐밥, 김치가 전부인 점심을 다들 모래 소리 서걱거리며 맛있게도 먹는다. ‘봉사의 보람’은 모두에게 그 무엇보다도 ‘맛난 반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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