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부 창단 2년만에 전국우승 광주 치평초 정상진 감독
배구부 창단 2년만에 전국우승 광주 치평초 정상진 감독
‘낮에는 배구감독, 밤에는 학교 경비원’
60대 배구인이 학교 경비까지 맡는 1인2역을 하며 올 전국대회 5관왕을 꿈꾸고 있다.
광주 치평초등학교 여자배구부 감독 정상진(61·사진)씨는 27일 광주 상무지구에 있는 이 학교의 썰렁한 체육관에서 전술훈련을 하느라 선수들과 뒹굴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겨울방학에도 평일에는 3시간, 휴일에는 6시간 맹훈련을 한다”며 “올해 전국 규모 대회에서 5번 우승하는 게 목표”라고 주먹을 꼭 쥐어 보였다.
‘선수 8명’에 숙소도 없이 열악
학교 숙직실 살며 야간 경비도
“60대에도 코트 위…나는 행복” 정 감독이 이끄는 배구부는 지난 11~15일 제주 칠십리기 전국 초등학교 배구대회에서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내리 다섯 경기를 이기는 ‘퍼펙트 우승’으로 전국대회 첫 정상을 차지하면서 올 순항을 예고했다. 그는 학기 중 전국대회는 세 차례로 출전이 제한되는 만큼 방학 동안 두 차례 우승하고, 학기 중 세 차례 정상을 차지한다는 목표로 전술연습과 체력강화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다. 선수들이 초등학생은 구사하기 어려운 ‘백 에이 속공’과 시간차 공격 등을 자유자재로 하면서 전국 강팀에게 한 세트도 내주지 않은 완벽한 우승을 차지한게 5관왕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부산 출신인 그는 30여년 동안 배구 명문인 부산 남성여중 덕명여상 등지에서 여러 국가대표를 길러냈고, 배구협회에서 심판으로도 활약하며 배구사랑을 키워왔다. 2005년 12월 광주배구협회의 초청으로 치평초등학교 배구부의 창단 감독을 맡아 2년여 만에 정상에 올려놨다. 6인제 시합에서 선수 전원이 8명에 불과하고 선수 숙소마저 없는 열악한 상황인데도 평균 신장 165㎝의 높이와 다양한 속공이 가능한 기량을 갖춘 강팀으로 발돋움하는 데는 그의 열정과 뚝심이 밑거름이 됐다.
정씨는 “초기에 운동보다 학원을 더 중시하는 학부모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며 “선수들의 기량이 쑥쑥 커가면서 이런 태도가 어느덧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부임 뒤 가족들이 사는 부산에 세 차례만 갔을 뿐, 학교 숙직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강팀을 육성하는 데 매달렸다. 서너평짜리 숙직실을 생활공간으로 제공받는 대가로 밤에는 학교 안을 순찰하는 경비까지 맡는 1인2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밤중에 교실에 불을 내거나 유리창을 깨려는 중고생의 장난을 서너차례 목격하고 훈계하기도 했다. 피곤하기는 해도 숙직실을 감독 숙소나 선수 쉼터로 번갈아 이용할 수 있어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60살이 넘어서도 코트 안에서 공을 만질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한 배구인”이라며 “초등학교 선수는 가능성이 무한한 만큼 키 크는 스트레칭과 기본기 훈련을 병행하면서 배구계의 별들을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학교 숙직실 살며 야간 경비도
“60대에도 코트 위…나는 행복” 정 감독이 이끄는 배구부는 지난 11~15일 제주 칠십리기 전국 초등학교 배구대회에서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내리 다섯 경기를 이기는 ‘퍼펙트 우승’으로 전국대회 첫 정상을 차지하면서 올 순항을 예고했다. 그는 학기 중 전국대회는 세 차례로 출전이 제한되는 만큼 방학 동안 두 차례 우승하고, 학기 중 세 차례 정상을 차지한다는 목표로 전술연습과 체력강화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다. 선수들이 초등학생은 구사하기 어려운 ‘백 에이 속공’과 시간차 공격 등을 자유자재로 하면서 전국 강팀에게 한 세트도 내주지 않은 완벽한 우승을 차지한게 5관왕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부산 출신인 그는 30여년 동안 배구 명문인 부산 남성여중 덕명여상 등지에서 여러 국가대표를 길러냈고, 배구협회에서 심판으로도 활약하며 배구사랑을 키워왔다. 2005년 12월 광주배구협회의 초청으로 치평초등학교 배구부의 창단 감독을 맡아 2년여 만에 정상에 올려놨다. 6인제 시합에서 선수 전원이 8명에 불과하고 선수 숙소마저 없는 열악한 상황인데도 평균 신장 165㎝의 높이와 다양한 속공이 가능한 기량을 갖춘 강팀으로 발돋움하는 데는 그의 열정과 뚝심이 밑거름이 됐다.
정씨는 “초기에 운동보다 학원을 더 중시하는 학부모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며 “선수들의 기량이 쑥쑥 커가면서 이런 태도가 어느덧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부임 뒤 가족들이 사는 부산에 세 차례만 갔을 뿐, 학교 숙직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강팀을 육성하는 데 매달렸다. 서너평짜리 숙직실을 생활공간으로 제공받는 대가로 밤에는 학교 안을 순찰하는 경비까지 맡는 1인2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밤중에 교실에 불을 내거나 유리창을 깨려는 중고생의 장난을 서너차례 목격하고 훈계하기도 했다. 피곤하기는 해도 숙직실을 감독 숙소나 선수 쉼터로 번갈아 이용할 수 있어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60살이 넘어서도 코트 안에서 공을 만질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한 배구인”이라며 “초등학교 선수는 가능성이 무한한 만큼 키 크는 스트레칭과 기본기 훈련을 병행하면서 배구계의 별들을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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