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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사람] 잊혀진 ‘조선 그릇쟁이’ 되살리다

등록 2008-05-09 18:34수정 2008-05-09 22:57

조선 도공 이야기 ‘신의 그릇’ 펴낸 사기장 신한균씨
도예공 ‘애환’ 발품 추적 10여년
일본 도자기 역사 세운 삶 짚어
“명품 조선사발 국내서 더 몰라”

한때 조선 예술미학의 대가로 떠받들여졌던 일본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1889~1961)가 일본에 건너가 국보가 된 조선 사발 기자에몽 이도를 두고 이런 말을 했다. “기자에몽 이도는 천하제일의 다완이라 일컫는다. …이것은 조선의 밥공기다. 그것도 가난한 사람들이 예사로 사용하던 그릇이다. 너무나도 조잡한 것이다. 전형적인 잡기다. …저 평범한 그릇이 어떻게 아름답다는 인정을 받았을까? 거기엔 (일본) 차인(茶人)들의 놀라운 창작이 있었다. 밥공기는 조선인들이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대명물은 차인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도가 일본으로 건너오지 않았더라면 조선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이야말로 그 고향이다.”(<공예> 1931년 5월)

한국 사기장들의 자존심을 구기는 이 얘기를 한 방에 날려버리겠다고 작심한 사람이 있었다. 2005년 <우리 사발 이야기>라는 책을 써낸 사기장 신한균(48·사진)씨다. 신씨는 그 책에서 야나기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자신이 ‘황태옥’이라고 이름붙인 ‘이도 차완’은 차 그릇이 아니며 아무렇게나 만든 잡기(막사발), 밥공기는 더더욱 아니라고 했다. 신씨는 황태옥이 경남 진주 일대 가마에서 나온 민가의 제사용 그릇, 즉 제기로 특별히 디자인해서 구워낸 것이며, 자연미를 추구하던 조선 사기장이 “미학적 파격을 통해 한민족의 얼을 승화시킨 명품”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먹혀들었을까? 양산 통도사 부근에서 ‘신정희요’를 하고 있는 신씨가 7일 모처럼 상경을 했다. “일본사람들에겐 기분 나쁜 얘기일 수 있는데도 오히려 그들이 더 평가해 주었다. 제대로 된 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지난 3월 일본에서 <우리 사발 이야기>의 일본어판 <이도다완의 수수께끼>을 낸 그는 “반응도 좋다”고 했다. 그에 앞서 2월에는 노무라미술관 학예실장과 함께 쓴 <고려다완>을 일본에서 냈다.

그런 그가 이번엔 2권짜리 역사소설을 써냈다. <신의 그릇>(아우라 펴냄). 임진·정유 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 도자기 역사를 일으킨 조선 사기장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당시 역사를 복원해내고 그 의미를 물었다. 왜 썼나? “가슴 답답병에 걸렸다. 조선 사발에 대해선 국내에서 오히려 더 모른다.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거나 야나기의 주장같은 일본쪽 얘기를 읽거나 듣고 그대로 믿어버린다.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바로잡아야 한다.” 글자를 읽을 수는 있었지만 쓰지는 못했던 아버지의 한, 그릇쟁이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지난해 작고한 그의 선친은 전통 조선사발을 처음 재현해낸 도예가 신정희씨다. “당시 잡혀갔다 돌아오지 못한 사기장들의 한을 풀어주고 싶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왜 소설인가? “처음부터 소설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모으고 쫓아가다 보니 소설이 됐다. 쉽게 널리 알리는 데는 소설이 제격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가 글을 구상하고 자료를 찾고 일본 현지 등을 뒤지기 시작한 지는 십수년이 됐다. 소설을 쓰는 데만 2년이 꼬박 걸렸다. 썼다가 퍠기처분하고 또 쓰고 고치기를 거듭했다. “탈고하고 나니 몸무게가 15㎏이나 빠졌더라”고 했다. 10쪽에 가까운 국내외 참고문헌 목록만 봐도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삼평, 이경, 백파선, 팔산, 존해, 홍호연, 심당길, 박평의 등 등장인물은 모두 그렇게 해서 찾아낸 실존 피랍 사기장들. 웬만한 소설속 사건들과 배경들도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40여년 만에 귀환하는 주인공 ‘신석’만 순수 가공인물이다. ‘신의 그릇’은 바로, 신석이 사랑했던 일본여인 마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도 등장하는 황태옥이다.

‘공부하는 사기장’ 신씨는 “소설로는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했다. 본업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뜻이렷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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