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정권 민간인학살’
미국 이중태도 지적도
미국 이중태도 지적도
반세기 동안 금기시돼 많은 한국인들에게조차 낯선 이름이 된 ‘보도연맹 사건’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을 보도해 국제적 이슈로 부각시킨 <에이피>(AP) 통신은 전향한 좌익 인사와 무고한 농민 등을 대량 학살한 보도연맹 사건을 재조명하는 연속 기획물을 내보냈다.
통신은 1950년 여름 인민군에 밀려 남쪽으로 후퇴하던 이승만 정권이 대전에 수감돼 있던 보도연맹원 수천명을 학살한 사건을 다룬 기획기사 1편을 18일 보도했다. 희생자 가족과 학살에 가담한 전직 경찰관, 교도관 인터뷰에다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의 자료 등을 발굴한 점이 돋보였다. 이 보도는 19일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파이낸셜 타임스> 등 세계 언론 인터넷판에서 일제히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통신은 “남쪽 좌익 인사들이 남진한 북한을 돕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몇 주에 걸쳐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며 “반세기 동안 역사에 묻혀 있던 이 사건은 한국전쟁의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사건”이라고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말을 따 전했다. 이번 기사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가 지난해 1차 발굴을 끝낸 대전 보도연맹 사건에 초점을 맞췄다. 전체 국민보도연맹 가입자 30만명 가운데 최소 10만명 이상이 한국전쟁 당시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신은 이승만 정권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미국이 ‘이중 태도’를 보였다는 점도 강조했다. 통신은 “미국의 외교관들은 남한 정부에 양민학살을 중단하라고 촉구했지만, 미 국무부는 ‘내정 문제’로 치부해 방관했다”며, 중앙정보국과 군 정보기관의 보고를 통해 미국 정부가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았지만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도연맹 사건은 발생 직후 영국 공산당 기관지 <데일리 워커>가 보도해 처음 세상에 알려진 뒤, 한국에서도 민주화 이후 이따금 보도되거나 연구된 적이 있으나 크게 주목을 받은 적은 없었다.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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