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없이 살던 618명의 호적을 국가를 대신해 찾아준 한 시민이 국가로부터 감사의 훈장을 받았다.
자신의 생업도 밀어둔 채 이 일에 매달렸던 주인공은 정종연(65·무호적 취적봉사활동가)씨. 정씨는 25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42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이제는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는 말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소감을 대신했다.
정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1984년 여수 여객선 터미널에서 한쪽 팔이 없는 열 살짜리 구두닦이 소년을 만나면서부터다. 집도 없고, 부모도 모르는 이 소년이 호적마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씨는 그때부터 두 달 동안 순천지원을 몇 차례나 오가며 자신의 돈을 들여 호적을 만들어 줬다. 정씨는 “집이나 부모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호적이 없으면 투표도, 혼인신고도,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어 진짜 자립을 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개인’이 무적자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느낀 정씨는 그 때부터 15년 동안 정부에 청원서를 내는 노력도 함께 해왔다. 정씨가 지금껏 정부에 보낸 편지만 2만4천여 통에 이르고, 해당 부처에서는 정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귀찮은’ 존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씨의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 1999년 초 행정자치부가 전국 무적자 일제조사 및 취적지원 사업을 시행하게 됐고, 무적자 6375명 가운데 이중 호적자와 기소유예자 등을 제외한 2880명이 호적을 새로 얻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물론 보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씨는 “내가 호적을 만들어준 사람이 도피 중에 이중호적을 만든 사실이 적발돼 10여 차례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면서 “호적 브로커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돈도 안되는 일을 뭐 하러 열심히 하냐”는 가족들의 푸념을 듣기도 했고, “중국 동포들의 이중호적을 만들 생각이 있냐”는 브로커들의 접촉에 맘이 상한 적도 있었다.
정씨는 지난 2000년 겨울 전남 여수의 가게를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영등포 쪽방 촌에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햇빛도 들지 않는 쪽방에서 사는 아이들이 500명이 넘습니다.” 정씨는 호적 찾아주기에 이어 또 다른 인생의 목표를 찾은 듯 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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