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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조합 “임대주택·이전비 하나만 골라라” 법 어기며 거짓말

등록 2009-02-04 13:37

재개발로 철거가 진행 중이지만 주민 20% 정도가 떠나지 않은 서울 왕십리뉴타운 1구역에 3일 오전 건축 폐기물과 쓰레기가 널려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재개발로 철거가 진행 중이지만 주민 20% 정도가 떠나지 않은 서울 왕십리뉴타운 1구역에 3일 오전 건축 폐기물과 쓰레기가 널려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서울은 개발중…‘제2 용산’ 곳곳에
3. 왕십리뉴타운 영세세입자
조합도 구청도 토지보상법 개정 내용 ‘쉬쉬’
세입자 절반은 법이정한 보상 못받고 떠나
“권리 주장에 거지떼 취급”…처벌규정 없어

서울 하왕십리1동에서 7년째 살고 있는 주부 이지연(33)씨는 ‘유령 동네’가 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세입자한테 줘야 할 주거이전비를 재개발조합 쪽이 차일피일 미루며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왕십리 1구역은 2002년 뉴타운 후보지로 지정돼, 지난해 9월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났다. 현재 세입자를 포함해 주민의 80%가 이주한 상태다. 재개발이 본격화한 2007년 10월 조합은 사업시행 인가가 나자 세입자들한테 “임대주택 신청권과 주거이전비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법에 정해진 세입자 보상 규정에 따른 것’이라는 조합 말에 다들 그런 줄 알았다. 일부 세입자는 신청권을, 또다른 일부는 주거이전비를 받고 이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씨는 임대주택 신청권을 택했다.

하지만 조합 쪽의 말은 거짓이었다. 세입자들은 ‘법적으로’ 임대주택 신청권은 물론 도시근로자 가구의 넉달치 평균 가계지출액에 해당하는 돈(주거이전비)과 이사비용까지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2007년 4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이 개정되면서, 과거처럼 임대주택과 이전비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구청도 조합도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고, 이곳 세입자 가운데 절반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동네를 떠났다. 이씨는 “뒤늦게 세입자들이 대책위원회를 꾸려 조합을 찾아갔더니 거지떼 취급을 했다”며 “왜 법이 보장하는 내 권리를 찾는데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세입자 박아무개(69·여)씨는 병든 남편이 임대주택을 받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아 지난 6월 주거이전비만 받고 뚝섬으로 이사했다. 박씨는 “원래 살던 집 보증금 2500만원에 500만원을 더 변통했지만 겨우 방 한 칸을 구했다”며 “어떻게든 자기 몫을 더 가져가려는 조합이 없는 세입자들을 등쳐먹은 게 아니냐”고 분개했다. 그는 “이곳 세입자 중에는 돈이 없어 아예 지방으로 이사를 가거나, 싼 집을 찾아 수도권 외곽으로 이사를 갔지만 직장 때문에 남편만 월 30만원에 고시원 생활을 하는 집도 있다”고 했다.

재개발 세입자 관련 제도 변천사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입자들은 ‘법대로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권리를 찾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지난해 4월부터 대책위를 꾸려 관할 구청과 국토해양부 등에 수없이 민원을 넣고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은정 세입자대책위 위원장은 “법이 있으니까 말만 하면 그대로 해결될 줄 알았는데, 세입자들의 보장된 권리조차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말했다.

지난달에야 대책위와 구청, 조합이 참여한 모임에서 ‘세입자들의 임대주택과 주거이전비, 이사비 지급 신청서를 모두 받겠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조합은 막상 신청서를 받을 때가 되자 “대책위가 아니라 개인별로 신청서를 내라”며 또 제동을 걸었다. 조합 사무실 앞에서 ‘일괄 접수’를 요구하며 농성 중인 세입자 양순자(69·무직)씨는 “개별 신청을 하라는 건 시간을 끌면서 세입자들의 공동 대응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이에 조합 쪽은 “임시 조합원총회를 열어 결과가 나오는 대로 추가 보상을 할 계획”이라며 “조합원들이 추가로 세대당 몇백만원의 부담을 해야 하는 문제여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세입자들은 법에 정해진 보상·합의 절차를 어긴 조합에 인허가를 내준 행정관청이 더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현행 규정상 관리처분 인가를 내주려면 세입자에 대한 보상이 마무리돼야 하는데, 조합이 세입자들을 속여 법에 정한 보상을 계속 회피하고 있는데도 인가를 내준다는 것이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왕십리 1구역의 경우, 주거이전비나 임대주택 등 상응하는 조처가 있다고 보고 조합에 시행 인가를 내줬다”며 “관리 인가의 경우도 주거이전비를 지불한 뒤가 아니라 지불 계획만 있으면 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들이 철저히 외면되는 구조가 근본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시 재개발 사업은 지역·용도 등을 지역 주민에게 알리고(주민공람), 세입자 등에게 적정한 보상을 한 뒤 인허가가 나면(관리처분 인가) 모든 재산권은 조합으로 귀속된다. 단계별로 마찰이 빚어지기 일쑤다. 뉴타운을 비롯한 대부분의 재개발 지역에서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채 사업이 강행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은정 위원장은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는 주민공람 때만 참여할 수 있다 보니, 주거이전비를 축소하거나 지급을 미루는 행위, 이사비를 주지 않는 행위 등을 알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주민공람의 경우에도, 두 곳 이상의 일간지에 공고하거나 원주민 전수조사를 통해 의견을 모아야 하는데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백준 건국대 겸임교수(부동산학)는 “세입자 보상을 정한 법 규정은 있으나, 이를 위반했을 때의 처벌 조항이 없다”며 “이 때문에 세입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소송을 하거나 집단 행동을 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경 김민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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