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SH공사, 법정기준 어기고 시설비용 부담시켜
고충처리위 권고에도 ‘배짱’…전국 30여곳 줄소송
고충처리위 권고에도 ‘배짱’…전국 30여곳 줄소송
대한주택공사와 서울시 에스에이치(SH)공사 등이 공공 개발지역으로 지정한 터의 원주민들에게 법정 기준보다 높은 분양가를 적용해 온 관행에 대해, 전국 30여 개발지역에서 ‘분양금을 낮추거나 돌려달라’는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현행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은 공공 개발지역으로 지정해 땅을 강제수용할 경우 이주정착지를 제공하고 도로, 급수·배수시설 등 생활기본시설 설치비용을 사업 시행자가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공 등은 지금까지 공공 개발지역 땅을 수용하면서 원주민들에게 관행적으로 일반 분양가를 적용해 곳곳에서 마찰을 빚어왔다.
경기 고양 풍동지구 택지개발 과정에서 집터를 수용당한 오아무개씨 등 100명은 2003년 “이 지역 원주민들에게 일반 분양가를 적용한 주공의 결정은 잘못됐다”며 국민고충처리위원회(고충처리위)에 민원을 넣었다. 고충처리위는 2004년 2월 “생활 기본시설비 등을 뺀 가격 이하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풍동 지역의 경우, 원주민들에게 ‘일반분양가’(2억1천여만원)에서 기반시설 설치비(1억5천여만원)를 뺀 ‘특별분양가’(5천여만원)에 아파트를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공이 고충처리위 권고를 따르지 않자 주민들은 소송을 냈고, 1·2심에서 잇따라 승소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법제처는 2007년 6월 “생활기본시설 비용은 이주대책자에게 부담시키면 안 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정부도 같은 해 10월 ‘이주정착지’ 개념을 ‘이주대책의 실시로 건설하는 주택단지를 포함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해 법을 고쳤다.
‘풍동 소송’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경기 부천 소사, 대구 남산, 인천 송도 등 전국 30여 곳에서 이와 비슷한 소송이 잇따랐다. 그러나 주공 등은 현재도 “‘이주정착지’에는 아파트와 같은 ‘이주단지’는 포함되지 않는다”며 특별분양가 적용을 거부하고 있다. 주공 등이 2000년 이후 공공 택지개발 방식으로 분양한 아파트는 모두 200여 지구 150여만 가구로, 이 가운데 원주민 분양 물량은 평균 10% 정도다. 이들 지역에서 줄소송이 제기될 경우 소송 가액만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 은평·장지·발산 지구 등에서 원주민과 소송중인 에스에이치공사 쪽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 “(소송에서 질 경우) 공사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1조원이 넘는다”는 의견서를 낸 바 있다.
주공 관계자는 “대법원의 판단을 지켜보고 있으며, 패소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감시국장은 “공공 개발지역에서 집을 수용당한 원주민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해온 주공 등의 관행은 바로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글 길윤형 황춘화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