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 대신 머리카락·손톱 맡깁니다” “그날의 항쟁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지금은 그 정신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아 세계에 처음으로 알렸던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전 일본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68)는 16일 항쟁의 현장인 광주를 찾아 “한국국민과 광주시민은 5·18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며,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4월 심장병으로 쓰러진 뒤 병원 응급실에서 “광주에 묻히고 싶다”고 밝히면서 화제를 모았으며, 최근 병세가 호전되면서 광주 5월 단체의 초청을 받았다. 광주에 도착한 그는 숙연한 어투로 “5·18은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민주화운동의 ‘본보기’”라며 “모든 이들이 자유·평화·민주주의를 위해 숨진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5년 전을 회고하며 “금남로 전남도청 기독병원 등지에는 수많은 시민이 총에 맞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로 숨져 있었다”며 “한없는 슬픔과 두려움에 휩싸였던 도시의 분위기를 또렷이 기억한다”고 전했다. 취재 당시 그는 “광주에 갇힌 회사 사장을 찾으러 왔다”고 계엄군의 봉쇄를 따돌렸고, 공항에서 일본에 필름을 송고할 때는 포장한 상자를 ‘친구에게 보낼 결혼 선물’이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이런 용기와 기지로 광주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은 영상은 그해 5월22일 독일방송을 통해 세계로 퍼졌다. 그해 9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판결을 받자 ‘기로에 선 한국’이란 제목으로 45분짜리 특집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군사정권의 폭정 전세계에 알렸다. 이어 86년 서울 광화문 시위를 취재하다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기도 했다. 그는 불굴의 기자정신을 평가받아 2003년 제2회 송건호언론상을 받았다.
그는 5·18 25돌을 맞아 광주에서 열리는 국제평화캠프, 5·18전야제와 기념식, 광주인권상 시상식 등에 참여한다. 또 19일 서울 목동의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에서 탄압을 뚫고 진실을 알린 공로로 제2회 이달의 카메라기자상(특별상)을 받는다. 광주 안장에 대해 그는 “가족의 만류로 광주에 묻히기는 어려워졌지만 다른 상징적인 방법으로 광주와 인연을 간직하고 싶다”고 다시금 진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를 위해 이번 방문 때 자신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담은 봉투를 5·18기념재단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몇 차례 큰 수술을 받아 몸 속에 인공동맥을 2개나 시술한데다 날마다 약을 먹어야하기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다. 주치의는 무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부인을 동반한 그의 방문을 허락했다. 용기 있는 광주시민들의 초대와 환대에 감사한다는 그는 슬픔과 비운이 아로새겨진 항쟁의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지 못해 안타깝다는 마음을 전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