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10년, 앞으로 10년’이란 주제로 ‘6월포럼’이 마련한 연속토론회가 20일 저녁 서울 정동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렸다. 지난 10년에 대한 성찰에 기초해 다가올 10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실천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양길승 녹색병원장,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 1987년 6월 항쟁 참여 인사들이 모여 만든 6월포럼은 <한겨레> 후원으로 다음달 10일까지 △사회 △경제·생태 △문화·예술 △정치 4개 분야에 걸쳐 매주 수요일 한 차례씩 토론회를 연다. 두번째 토론회(경제·생태)는 27일 저녁 7시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다.
“고령화와 양극화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재앙은 피할 수 없다.”
6월포럼 연속토론회의 첫번째 발표자로 나선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출산에 따른 급격한 고령화와 소득불평등 심화, 비정규직 양산에 따른 양극화를 다가올 10년 동안 한국 사회가 직면할 최대의 위기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2020년이면 65살 이상 고령인구가 15%를 넘어서고 2030년이면 24.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방치할 경우 노동력 감소에 따른 사회적 활력의 저하는 물론, 세대 갈등과 다문화사회 도래에 따른 갈등 요인이 중첩돼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회적 불안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극화와 관련해선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과 조세제도의 정비를 대책으로 주문했다. 임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이 도입되면서 형식적 복지는 갖추게 됐지만 여전히 유럽의 선진국에 비해선 부족한 수준”이라며 “20% 수준인 조세부담률을 북구와 비슷한 50~60% 수준으로 높이되 조세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법인세나 소득세 같은 직접세를 올리는 게 능사는 아니”라며 “국민건강 증진이나 에너지 소비 감축 효과도 있는 담배·주류세, 유류세 인상을 검토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도 빼놓지 않았다. 고령화나 양극화가 심각한 문제지만 인류가 공통으로 직면한 사안인 만큼, 우리만의 발전 잠재력을 살려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궁극적으로 통일이 이뤄진다면 이웃한 중국·일본과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여지가 커진다”며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정책을 참을성 있게 펼쳐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시재 가톨릭대 교수는 ‘6월 정신’의 계승을 줄곧 강조했다. 그는 “6월항쟁은 수십 년간 우리를 옥죄고 있던 냉전의식으로부터 우리 안의 잠재력과 창조성을 해방시켰다”며 “한국이 아시아 민주화의 선두주자가 되고 문화·예술의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궁극에는 모두 6월 정신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6월항쟁의 또다른 성과로 ‘시민운동의 성장’을 꼽은 이 교수는 “조직화된 시민운동은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에서 정점을 찍은 뒤 점차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진단한 뒤 “시민사회는 이제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뚜렷이 나타난 ‘행위자 없는 사회운동’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종래의 대중과도 다르면서 학생·노동자·시민처럼 조직화된 주체도 아닌, 촛불시위에서 등장한 “스스로 정보를 발신하고 행동을 기획하면서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행위자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시사평론가 정관용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 토론회에는 6월항쟁 당시 주역으로 참여했던 시민사회 원로들과 학생·직장인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자유토론 시간에, 산부인과 의사 김창기씨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남북한을 아우른 한반도 차원에서 해법이 모색돼야 한다. 갑작스런 통일에 대비해 지금부터라도 남북한 연령대별 인구통계에 기초한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북 익산에서 온 이성학씨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연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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