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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자책감이 컸던걸까, 억울함이 컸던걸까

등록 2009-05-24 09:13수정 2009-05-24 09:19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에서 문재인(왼쪽), 이병완 전 비서실장이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빈소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에서 문재인(왼쪽), 이병완 전 비서실장이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빈소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극단적 선택 이유는]
검찰의 정치보복·망신주기식 수사에 분노
‘도덕적 파산’ 지지세력에 상처 부담도
정신적 고통으로 최근 잠못자고 식사못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을 둘러싼 해석은 분분하다. 검찰이 자신의 측근과 가족을 상대로 ‘표적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억울함과 인간적 모멸감, 지지 세력에 대한 미안함, ‘도덕적 파산’에 대한 낙담 등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죽은 이는 말이 없다’. 다만, 최근까지 노 전 대통령의 언행과 측근들의 전언을 종합해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한 반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 노 전 대통령은 친형인 노건평씨가 지난해 말 각종 이권 청탁에 연루돼 구속될 때까지만 해도 짤막한 사과만 남긴 채 침묵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박연차 태광실업 당시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 수사가 노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의혹 수사로 방향을 틀고, 측근들이 잇따라 구속되자 크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자신의 오랜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횡령·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한 뒤,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가 ‘정치 보복’이라는 의혹을 일부 제기했다. 지난달 17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은 강 회장과의 순수한 후원 관계를 강조하며 “강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았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밝힌 것이다. 오랜 친구인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공금 횡령’으로 구속된 뒤에는 “이젠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비웃음을 살 뿐”이라며 “말을 더 할 면목도 없다”고 애통해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 검찰이 확인도 되지 않은 시시콜콜한 사건 뒷얘기를 언론에 흘리며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것에 분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은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언론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하고 모멸감을 주는 행태를 보인 데 대해 치를 떨었다”고 말했다. 이 측근 인사는 특히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서 박연차 회장에게서 받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는 언론 보도 뒤 검찰의 행태에 심한 분노를 느꼈다”고 덧붙였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수사 초반 “언론들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놓아서 사건의 본질이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 소재는 주로 검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과 언론을 향한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특히 지난달 30일 자신을 조사한 뒤 검찰이 사법 처리 여부를 결론내지 않은 채 40만달러 추가 수수설과 관련한 딸 노정연씨 부부 수사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씨에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고 한다. 참여정부 한 수석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 당일에도 측근들에게 ‘미안하다. 그런데 나는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며 “사실을 떠나 권양숙 여사 뒤에 숨는 치졸한 인간으로 몰아가는 것을 가장 괴로워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건강 상태까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대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 지난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매우 힘들어 하신다”며 병실을 알아봤다고 한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측근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권양숙씨의 재소환이 가까워오면서 수일 전부터 잠도 못자고 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 자택 집무실에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덕성과 청렴이라는 정치적 자산이 무너지면서 ‘도덕적 파산’ 선고를 받은 현실과 이로 인해 자신을 지지했던 ‘민주화 세력’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자책감도 커 보인다. 그는 지난달 2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마지막으로 올린 글에서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지지자)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고,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며 참담한 심경을 내비쳤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일상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검찰 소환을 앞두고선 집 안에서의 소소한 일상이 날마다 언론에 보도돼 사실상의 ‘가택 연금’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사생활은 소중한 것”이라며 “창문을 열고, 마당을 걸을 수 있는 자유 정도는 누리고 싶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먼 산을 바라보고 싶어도 카메라가 지키고 있어 그 산봉우리를 바라볼 수 없다”고 호소하던 그는 결국 그 ‘먼 산’의 한 봉우리에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냐”고 적은 노 전 대통령은 개인적 결백을 증거할 ‘최후의 승부수’로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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