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씨 아버지 박정기씨.
22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버지의 슬픔과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발표가 나온 7일, 박씨의 아버지 박정기(80)씨는 “지금이라도 당사자들이 사죄하고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며 거친 한숨을 토해냈다. 박씨는 2007년 진실화해위에 아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를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87년 사건 은폐를 주도한 치안본부(지금의 경찰청) 관련자들이 처벌됐지만, 이들 배후에 더 큰 권력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22년 만에 의혹이 일부 밝혀졌지만, 박씨는 “아직 완전한 끝은 아니다”라고 잘라말했다. 전두환 대통령 등 당시 최고 권력자들이 사건의 은폐·왜곡을 묵인했거나, 지시했을 가능성이 남아 있는 탓이다.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관계기관대책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에 회의 내용이 대통령에게 보고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진실화해위는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부산에서 평범하게 공무원 생활을 했던 박씨는 1987년 1월 아들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을 역임하는 등 20여년 동안 민주화 운동에 매진해왔다. “아들아, 아버지는 할 말이 없대이….” 22년 전 엄혹했던 겨울 아들의 뼛가루를 뿌리며 박씨가 남긴 한마디는 전 국민에게 군사정권의 폭압성을 고발하는 애끓는 외침이 됐다. “국가기관이 공식적으로 범죄에 개입한 게 확인된 이상 정부가 유족들과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텐데 …. 이 정부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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