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양재동 잔디마을 주민들이 18일 오후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받아주라’는 대법원 판결 소식을 듣고, 엉뚱한 주소가 기재된 주민등록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번 소송 결과로 이들은 잔디마을(양재2동 212번지)로 주소지를 옮길 수 있게 됐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법 “잔디마을 주민 전입신고 받아줘야”
40여가구 수도·전기·우편 혜택 가능해져
40여가구 수도·전기·우편 혜택 가능해져
“우리가 북한 사람도 아니고, 주민등록이 안 된다니…. 우편물도 여기선 못 받아 예비군 훈련 통지서를 받지 못해 40만원이나 벌금을 낸 이웃도 있었다오.”(이갑순·76)
18일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인 서울 서초구 양재동 잔디마을 사람들한테 ‘앞으로 주소를 갖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거부한 서울 서초구 양재2동사무소(주민센터)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주민 쪽이 최종 ‘승리’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이날 마을 주민 서양석(50)씨가 전입신고를 받아달라며 2007년에 낸 소송에서, 서씨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전입 신고자가 해당 주소지에 ‘거주 목적’으로 30일 이상 살았다면 지방자치단체의 무허가 건축물 관리 등 다른 사항을 고려하지 말고 전입신고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결했다.
소식을 듣고 모여든 주민들은 기쁨과 설움이 교차하는 듯했다. 10년째 이곳에 사는 김복희(63)씨는 “친척집에서 보낸 김치 한 번 택배로 받을래도 주소지가 없어 건넛동네 주민한테 대신 받아달라고 사정해야 했다”고 말했다.
1980년대 후반 갈 곳을 잃은 철거민 등이 양재2동 도로 밑 산기슭에 하나둘 천막을 치면서 생겨난 잔디마을에는 지금도 40여가구 90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곳이 시유지인 까닭에 동사무소 쪽은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받아주질 않아, 주소지 없이 살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수도·전기·우편·의료보험 등에서 이들은 ‘국민’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수도 시설은 5년 전에야 겨우 들어왔다. 이들 대부분은 건넛마을 주민들 집에 세든 것처럼 서류를 만들어 그쪽으로 우편물 등을 받고 있다. 잔디마을 대표인 서양석씨는 “건넛마을의 한 인심 좋은 주민 분의 경우엔, 잔디마을 사람 20여명이 그 집에 살고 있는 것처럼 서류가 돼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송파구 화훼마을, 경기 하남시 초이동 개미촌 등 또다른 도심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의 주민들도 전입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서울·경기 지역에 있는 ‘또다른 잔디마을’은 모두 35개로, 전입신고가 되지 않은 탓에 수도나 전기조차 쓸 수 없는 곳이 수두룩하다.
노기덕 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사무총장은 “수도·전기·학교 통학·의료보험 등 기본적 인권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다른 마을 주민들에게 힘이 되는 판결”이라며 “이들이 장기적으로 영구임대주택 등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등 실질적인 주거 대책 마련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경 김남일 기자 edge@hani.co.kr
서울·경기 일대 비닐하우스촌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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