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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국군병원 오진에 실명위기

등록 2009-07-02 20:37수정 2009-07-03 21:44

김씨는 다시 수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한 줄씩 천천히 읽어나가야 하는 처지라 문제 하나를 푸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는 “특수교육과에 진학해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시 수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한 줄씩 천천히 읽어나가야 하는 처지라 문제 하나를 푸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는 “특수교육과에 진학해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말했다.
급성망막외상증을 “안약넣고 쌍꺼풀 수술해라”
군생활 1년만에 장애 날벼락…“과실책임 의료기록도 조작해”
“국군병원에 갔더니 쌍꺼풀 수술을 하면 낫는다고 하더군요. 정말로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선임병은 꾀병이라고 했고,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을 할 땐 ‘이러다 죽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김수훈(21)씨는 2007년 8월 현역 1급 판정을 받고 입대했다. 그러나 군 생활 1년 만에 그는 실명 위기의 장애를 입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바늘구멍을 통해 세상을 보는 듯한 심한 시야 협착으로 왼쪽 눈은 10%, 오른쪽 눈은 30%의 시력만 남아 있다.

강원도 화천 최전방에서 수색대대 통신병으로 근무하던 김씨는 지난해 1월 말, 야간 보초를 서다 처음으로 눈앞이 흐릿해지는 경험을 했다. 차 번호판이 보이지 않았다. 의무대에선 ‘안구건조증’이라며 인공 눈물을 처방했다. 종종 눈앞에 섬광이 일었고, 그때마다 세상은 터널처럼 좁아 보였다. 참다 못해 2주 만에 찾아간 춘천국군병원에선 ‘안검내반 및 첩모난생증’이라고 했다. 속눈썹이 눈을 찌르는 병이니 우선 안약을 넣고, 쌍꺼풀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부대로 복귀한 그에겐 “쌍꺼풀 수술이 그렇게도 하고 싶었느냐”는 놀림이 돌아왔다. 선임병은 “꾀병을 부린다”며 괴롭혔다. 야간훈련이나 야간근무에 내보내졌고, 그때마다 몇 번씩 넘어지고 굴렀다. 1년이 넘었는데도 손과 무릎엔 당시 흉터가 남아 있다.

지난해 4월, 정기휴가를 나온 김씨는 어머니(50)의 손에 이끌려 국군수도병원에 갔다. 그제야 안압이 시신경을 망가뜨릴 만큼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진단은 ‘녹내장 의증’이라고 했다. 정확한 병명은 두 달 뒤에야 나왔다. 정밀검사를 한 분당서울대병원 등에선 녹내장이 아니라 ‘급성망막외상증’(AZOOR)이라고 진단했다. 스트레스나 외상에서 비롯되는 급성 희귀병이라는 것이다. 그해 8월 김씨는 군복무 중 발병을 이유로 ‘전공상 전역’을 했다.

김씨는 군이 과실책임과 관련이 있는 자신의 의료기록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했다고 주장한다. 군복무 중 발병을 증명하는 ‘공무상 병인증서’에는 발병 일시가 2008년 7월8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그 날짜에 김씨는 국군수도병원에 이미 입원해 있었다. 병명란에 적혀 있는 ‘말기 녹내장’도 사실과 다르다. 김씨를 진료한 분당서울대병원의 황정민 안과 전문의는 “김씨의 병은 녹내장으로 보기 어렵다”며 “일찍 발견하지 못해 심각한 상태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씨 가족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신청을 했지만, 수원보훈지청은 “녹내장은 유전성으로 군에서 발현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진단서까지 떼어 냈지만, 이번엔 “‘급성망막외상증’의 원인은 아직 알려진 바 없어 공무와 관련된 질병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 6월 말 국가유공자 신청을 다시 냈다. 네번째다.

군 입대 전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녔던 김씨는, 결국 자퇴서를 썼다. 14년 전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초등학교에서 조리사로 일하며 뇌성마비를 앓는 큰아들과 김씨를 뒷바라지했던 어머니는 이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그를 돌보고 있다. “빨리 군대 다녀와 어머니를 편히 모시겠다”던 한 청년의 꿈은 온데간데없다. 대한민국 국군으로 지낸 1년 만의 일이다. 글·사진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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