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7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심포지엄이 열린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관에서 ‘한국 민주주의와 생명 평화’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노무현 시대’ 심포지엄] 노무현 시대란 무엇인가
정부를 비판한 온라인 논객은 구속되고, 시국선언을 준비한 전교조 교사들은 잘린다. 여섯달 전 공권력과의 충돌로 목숨을 잃은 철거민들은 정부로부터 한마디 사과도 듣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넘어, 이젠 ‘파시즘의 징후’가 거론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반칙과 특권에 대한 반대, 지역주의의 극복,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노무현은 갔다. 그의 시대도 갔다. 그러나 ‘노무현 시대’는 가지 않았다. 노무현 시대는 과거가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앞으로 ‘성취해야 할 미래’이기 때문이다.
7일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심포지엄’은 노무현시대의 의미를 돌아보고 그 한계를 짚어봄으로써 그 가치를 현재진행형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정치개혁·민주주의 힘쓰고
국민과의 직접소통 통한
표현의 자유는 ‘소중한 유산’ ■ 신자유주의 충격에 어떻게 맞섰나 ‘세계사적 진보와 노무현 시대’라는 주제로 발표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노무현 정부가 집권했던 2003년 봄부터 2007년 겨울까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막 절정을 지나가고 있었다”며 “노무현 정부는 정치·사회 분야에선 진보적 성향을 보여주었지만 다른 정책에선 기존 진보-보수의 이분법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지지세력의 반대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강행하는 동시에, 보수세력이 반대하는 국가보안법 철폐, 사학법 개정 등을 추진한 것이 그 사례였다”며 “대체적으로 현실주의적인 기획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사회양극화·복지 문제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김 교수는 “대기업-중소기업, 수출-내수, 정규직-비정규직, 소득-소비의 양극화가 빠른 속도로 확대돼 왔지만 노무현 정부는 ‘동반성장론’, ‘비전 2030’등 담론적 처방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노조 권리 인정, 사회복지 보장 확대 등 ‘뉴딜연합’을 통해 지지기반을 확대하고 민주당을 전국정당화했던 것처럼 참여정부도 계층연합·복지연합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 지지기반을 굳히는 데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권력의 ‘자의적 지배’에 대한 극복의지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과)는 “노 전 대통령은 검찰·감사원·국정원 등을 통한 ‘자의적 지배’를 혐오하고 공동체의 정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어떤 기성 정치인보다 공화주의적 가치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공화주의적 이상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데 대해 △취약한 지지기반 △강경보수언론의 일방적 구도 △기성 보수 엘리트들의 적대감 △좌파진영과의 갈등 등을 거론했다. 안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빈곤한 정치적 자본과 민심 동향을 고려한다면 4대 입법같이 거대한 과제들보다는 작은 민생정책들을 축적하는 것이 더 지혜로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온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는 “노 전 대통령이 정치개혁·민주주의 심화에 노력을 기울인 건 맞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지역주의·정당민주화·시민사회에 대한 제약 등은 엄존하고 있다”며 “이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이 추구한 가치를 제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자유주의와 타협하고
양극화·복지 담론적 처방만
지역주의 극복도 성공못해 ■ 지역주의 극복의 노력과 좌절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는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창당을 통해 전국정당화를 시도했으나 더이상 지속되지 못했다”며 “오히려 임기 후반 열린우리당 자체가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한 국가균형발전정책이 당시에도 반대세력의 저항에 직면했고 이후 이명박 정권 등장으로 지속적인 추진 여부조차 불투명하게 됐다”며 “노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극복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짚었다. 정 교수는 “민주당은 외연확대를 통해 수도권·충청권 기반을 되찾고 ‘영남민주연대’ 등 독자적 활동을 통해 영남 지역에서 자유선진당이나 친박연대에 넘겨줬던 제2당의 지위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호 한양대 교수(정치학)도 노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극복 실패엔 공감했으나 해법은 달랐다. 정 교수는 “영남 민주세력과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각자의 길을 모색하자는 정해구 교수의 주장이 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그에 앞서 해야할 일은 민주당이 ‘뉴민주당플랜’을 조기 폐기하고 재창당 수준으로 환골탈태해 다양한 정치세력이 연합할 수 있는 콘텐츠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시민사회와의 소통 방식 변화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노 전 대통령은 사회변동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높았던 정치인”이라며 “기존 정당 대신 ‘노사모’라는 새로운 정치 네트워크의 활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청와대에 시민사회수석실 신설 등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위한 다양한 장치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또 “전자적 공론의 장이 활성화되며 아래로부터의 소통 질서를 확장하는 효과를 가져왔고 이는 2008년 촛불집회라는 거대한 시민저항행동의 핵심 동력이 됐다”고 짚었다. 그러나 박재문 충남대 교수(사회학)는 “참여정부 시절에도 새만금간척사업, 방사선폐기물처리장 문제 등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시민운동 세력과 정부 사이에 갈등이 많았다”며 “이는 정부가 시민운동과 함께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작동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왼쪽부터 김호기, 안병진, 정해구, 조대엽
국민과의 직접소통 통한
표현의 자유는 ‘소중한 유산’ ■ 신자유주의 충격에 어떻게 맞섰나 ‘세계사적 진보와 노무현 시대’라는 주제로 발표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노무현 정부가 집권했던 2003년 봄부터 2007년 겨울까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막 절정을 지나가고 있었다”며 “노무현 정부는 정치·사회 분야에선 진보적 성향을 보여주었지만 다른 정책에선 기존 진보-보수의 이분법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지지세력의 반대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강행하는 동시에, 보수세력이 반대하는 국가보안법 철폐, 사학법 개정 등을 추진한 것이 그 사례였다”며 “대체적으로 현실주의적인 기획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사회양극화·복지 문제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김 교수는 “대기업-중소기업, 수출-내수, 정규직-비정규직, 소득-소비의 양극화가 빠른 속도로 확대돼 왔지만 노무현 정부는 ‘동반성장론’, ‘비전 2030’등 담론적 처방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노조 권리 인정, 사회복지 보장 확대 등 ‘뉴딜연합’을 통해 지지기반을 확대하고 민주당을 전국정당화했던 것처럼 참여정부도 계층연합·복지연합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 지지기반을 굳히는 데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권력의 ‘자의적 지배’에 대한 극복의지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과)는 “노 전 대통령은 검찰·감사원·국정원 등을 통한 ‘자의적 지배’를 혐오하고 공동체의 정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어떤 기성 정치인보다 공화주의적 가치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공화주의적 이상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데 대해 △취약한 지지기반 △강경보수언론의 일방적 구도 △기성 보수 엘리트들의 적대감 △좌파진영과의 갈등 등을 거론했다. 안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빈곤한 정치적 자본과 민심 동향을 고려한다면 4대 입법같이 거대한 과제들보다는 작은 민생정책들을 축적하는 것이 더 지혜로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온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는 “노 전 대통령이 정치개혁·민주주의 심화에 노력을 기울인 건 맞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지역주의·정당민주화·시민사회에 대한 제약 등은 엄존하고 있다”며 “이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이 추구한 가치를 제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자유주의와 타협하고
양극화·복지 담론적 처방만
지역주의 극복도 성공못해 ■ 지역주의 극복의 노력과 좌절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는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창당을 통해 전국정당화를 시도했으나 더이상 지속되지 못했다”며 “오히려 임기 후반 열린우리당 자체가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한 국가균형발전정책이 당시에도 반대세력의 저항에 직면했고 이후 이명박 정권 등장으로 지속적인 추진 여부조차 불투명하게 됐다”며 “노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극복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짚었다. 정 교수는 “민주당은 외연확대를 통해 수도권·충청권 기반을 되찾고 ‘영남민주연대’ 등 독자적 활동을 통해 영남 지역에서 자유선진당이나 친박연대에 넘겨줬던 제2당의 지위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호 한양대 교수(정치학)도 노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극복 실패엔 공감했으나 해법은 달랐다. 정 교수는 “영남 민주세력과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각자의 길을 모색하자는 정해구 교수의 주장이 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그에 앞서 해야할 일은 민주당이 ‘뉴민주당플랜’을 조기 폐기하고 재창당 수준으로 환골탈태해 다양한 정치세력이 연합할 수 있는 콘텐츠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시민사회와의 소통 방식 변화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노 전 대통령은 사회변동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높았던 정치인”이라며 “기존 정당 대신 ‘노사모’라는 새로운 정치 네트워크의 활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청와대에 시민사회수석실 신설 등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위한 다양한 장치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또 “전자적 공론의 장이 활성화되며 아래로부터의 소통 질서를 확장하는 효과를 가져왔고 이는 2008년 촛불집회라는 거대한 시민저항행동의 핵심 동력이 됐다”고 짚었다. 그러나 박재문 충남대 교수(사회학)는 “참여정부 시절에도 새만금간척사업, 방사선폐기물처리장 문제 등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시민운동 세력과 정부 사이에 갈등이 많았다”며 “이는 정부가 시민운동과 함께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작동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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