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체제 학원사찰 사례
유신반대 학생 강제징집
프락치 활동하면 장학금
중정·경찰 20여명씩 상주…대학도 학생·교수 탄압 협조
프락치 활동하면 장학금
중정·경찰 20여명씩 상주…대학도 학생·교수 탄압 협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가 30일 내놓은 ‘유신체제하 학원통제 사건 보고서’를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1970년대 대학가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와 경찰, 학교 당국이 조직적으로 학원 사찰과 학생 통제에 나섰던 것을 알 수 있다.
사복 체포조가 대학의 각 건물마다 20여명씩 상주할 정도로 정보기관의 학원 사찰은 일상화돼 있었다. 1976년 당시 서울대에 다니던 양아무개씨는 진실·화해위의 조사에서 “수업 중에 학생처에서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총장실 옆방에 가보니, 서울대 인문대 담당 중앙정보부 직원이 ‘학생운동 동향’ 등을 묻더니 2500원이 든 봉투를 쥐어줬다”고 말했다. 또 그는 “중정 직원이 직접 집에 찾아와 어머니에게 ‘연탄을 사주겠다’는 말로 학생운동을 못하도록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경우, 1978년 고려대 교문 옆 기관원 초소에서 발견된 ‘경비일보’라는 문건에 △교수 및 학생 언동 △어제 있었던 일 △경찰 조처 △강의실·도서관·나무 그늘에 모여 있는 학생 수까지 기록한 사례가 있었다.
현재 국가정보원이 보관하고 있는 문서 가운데 1979년 당시 ‘제적 및 문제 학생 동향 내사 결과보고’에도 서울대생 49명 등 16개 대학 136명에 대해 26일간 동향을 파악해 보고한 기록이 있다. 여기에는 △전 서울대생 심○○는 자가에서 독서로 소일, 교회 가는 일 외 출타 사실 발견치 못함 △고대 사학2 이○○는 매일 8:30 등교, 18:00경 귀가. 학업에 열중 △전 연대 교수 김○○은 반체제 분자들과 접촉하고 있으며 문제집회에 참가하는 자라고 적혀 있다. 감시 대상자의 일상까지 세세하게 파악해 보고한 것이다.
또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에 갔던 학생들은, 징역형을 받으면 군 면제를 받게 돼 있던 당시 병역법의 ‘예외’였다. 진실·화해위는 보고서에서 “병무 당국의 대외비 문서를 보면 ‘학원소요사태 관련 수형자는 현역병으로 입영시키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1975년엔 학생과 교직원으로 구성된 학내 군사훈련조직 ‘학도호국단 제도’가 시행돼 정부 기관의 또다른 학원 통제 수단이 됐다.
학교 당국도 정부의 탄압과 재정 문제에서 불이익 등을 우려한 나머지 학생 탄압에 손발을 맞췄다. 1971년에 발표된 대통령의 ‘학원질서 확립을 위한 특별명령 9개항’에 따라 대학은 모든 교수가 전체 학생을 몇 명씩 나눠 맡은 뒤 학생의 학업뿐 아니라 개인신상까지 지도해 이를 보고하도록 했다. 여기에 협조하지 않는 교수들은 1975년에 만들어진 교수재임용제도에 따라 교수직에서 탈락됐다.
또 학생들을 상담지도하는 방을 따로 뒀는데, 기관원들이 이곳에 상주하며 학생들의 동태를 감시하기도 했다. 진실·화해 위원회는 “국가와 학교 당국이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행한 학원 탄압의 진실을 바르게 알리고 재발 방지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