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 수정 이것이 문제다]
상. 수도권 집중이 경쟁력인가
이명박 정부가 중앙 행정기관을 이전하는 대신 기업·대학·연구소가 들어서는 행정도시 수정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도시가 자족기능 부족으로 50만명의 인구 유입이 어렵고 국가 경쟁력이나 해당(충청)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서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정부의 이런 문제의식에는 애초 행정도시 건설의 취지인 ‘국가 균형발전’ 문제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토·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행정도시 백지화 방침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국가 균형발전 정책 포기 선언이라고 보고 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국가 균형발전 정책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과 120조 등에 포함돼 있는 국가 정책의 기본이념이자 국가의 의무로,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멋대로 변경해선 안 된다”며 “이명박 정부가 행정도시를 대체할 수 있는 균형발전 정책 대안도 없이 일방적으로 행정도시 정책을 폐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된 주요 균형발전 정책을 대부분 뒤집거나 포기했다. 국가 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인 행정도시 정책을 백지화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행정도시 정책의 짝인 혁신도시 정책도 정부의 의지 부족으로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10월 말까지 180개 이전 대상 공공기관 가운데 기존 사옥을 매각한 곳은 한 곳도 없으며, 새 사옥 부지를 매입한 곳도 단 한 곳뿐이었다. 이 두 가지는 이전을 위한 핵심 조처들이다.
또 균형발전 정책의 핵심 기관이었던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지역발전위원회로 바뀌었으며, 행정수도·행정도시 정책의 대표적 반대론자인 최상철씨가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개정하면서 ‘균형’이란 표현을 삭제해 지역정책의 방향을 균형·분산에서 경쟁·특화로 바꾼 점도 균형발전 정책의 후퇴나 변질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노무현 정부에서 유지하려 했던 수도권 규제는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수도권 규제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풀렸다. 최근 내놓은 보금자리주택 건설 정책도 그린벨트 훼손뿐 아니라, 수도권 규제 완화의 성격이 강하다.
이상선 분권·균형발전 전국회의 공동대표는 “정부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통해 사실상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면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지역 균형발전 정책의 비전을 내놓지 않는 등 사실상 지역 균형발전 정책을 포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행정도시와 혁신도시 정책은 1960년대 이후 역대 정부들이 불균형 발전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한 결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7~79년 충남 공주시 장기면 일대로 수도를 이전하는 백지계획을 추진했다. 또 그 뒤의 정부들도 79~94년 사이에 과천, 98년 대전에 각각 정부청사를 지어 11개 부처와 11개 청을 이전하는 등 50년 동안 40개 이상의 균형발전 정책이 실행됐다.
그러나 역대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에도, 지방과 수도권의 불균형은 끊임없이 심화하고 있다. 대전개발연구원이 집계한 전국 지역내총생산(GRDP) 자료를 보면, 85년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은 38조1000억원으로 전체 지역내총생산 87조9000억원의 43.3%였다. 그러나 21년 뒤인 2006년에는 수도권이 409조3000억원으로 전체 857조4000억원의 47.7%를 차지해, 갖가지 수도권 규제 정책에도 수도권의 경제 집중도는 계속 증가했다.
지역별 지역내총생산 역시 서울은 85년 21조9000억원에서 2006년 193조1000억원으로 8.8배, 인천은 같은 기간 4조원에서 41조원으로 10.3배, 경기도 역시 12조2000억원에서 175조2000억원으로 14.4배가 각각 늘어났다. 그러나 대전은 5.2배, 충북은 8.9배, 충남은 9배가 늘어 전국 평균 증가 폭인 9.7배를 밑돌았다.
이창기 대전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행정도시를 원안대로 건설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국가 균형발전 정책을 포기한 첫 정권이 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불균형 발전으로 인한 부작용과 폐해가 앞으로 대한민국에 두고두고 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