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보수세력, 민주개혁 막으려 박정희 신화 꾸며”

등록 2009-11-09 21:15

한국경제정책연구회와 <한겨레>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한성대 에듀센터에서 함께 주최한 ‘박정희 시대의 재평가’ 정치분야 토론회에서 임혁백 고려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국경제정책연구회와 <한겨레>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한성대 에듀센터에서 함께 주최한 ‘박정희 시대의 재평가’ 정치분야 토론회에서 임혁백 고려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정희 시대 재평가 토론회] 정치분야




비장미 넘치는 비극의 역사라도 두번째로 재탕되는 순간 우스꽝스런 희극이 되고마는 게 역사의 진리다. 2009년 가을,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희극으로 재연되는 ‘박정희전’이다. 참모진을 대동한 채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이는 지도자의 모습에 훈훈한 감동보다 쓰디쓴 실소를 머금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의 의문은 이렇다. 왜 국민의 외면을 받고 심복의 총에 목숨을 잃은 30년 전 독재자가 향수와 모방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9일 오후 서울 혜화동 한성 에듀센터에 모인 사회과학자들의 의문도 마찬가지였다. ‘박정희 시대의 재평가’라는 이름 아래 모인 이들은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이 전무후무한 역사적 성취였는지, 인권과 민주주의를 희생시킨 박정희의 성장전략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등 ‘박정희 논쟁’의 핵심 논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한국경제정책연구회와 <한겨레>가 함께 주최한 행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산업화에 유리한 계급구조·미국 파격적 원조 작용
경제성장 원인 복합적인데 “박정희 덕분” 왜곡시켜
1978년 총선 야당에 득표율 뒤지는 등 당대평가 외면

“박정희 신드롬은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아버지 콤플렉스’가 낳은 퇴행적 병리현상이다.”

정상호 명지대 교수는 한국 사회를 휘감은 박정희 열풍을 ‘파파보이 콤플렉스’로 규정했다. 박정희가 죽은 뒤 독자적이고 체계적인 보수 이념을 만들어내지도, 박정희에 견줄만한 ‘훌륭한 자식’을 가져보지도 못한 보수세력이 탈냉전과 민주화라는 거시적 흐름에 적응하기보다 ‘위대한 아버지’ 품에 안기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이 박정희 신드롬이란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박정희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생각만큼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점인데, 그 근거를 정 교수는 임기 내내 ‘선거 압력’에 시달렸던 점, 1978년 총선에선 야당인 신민당에 득표율에서 뒤질 정도로 민심 이반이 심각했던 사실 등을 든다. ‘박정희 없는 유신체제’를 꿈꿨던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그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 박정희는 어떻게 부활했을까. 정 교수는 박정희 현상의 확산에는 세 차례의 계기가 존재했다고 본다. 첫번째 계기가 87년 대선국면에서 이뤄진 유신세력(공화당)의 정치세력화라면, 두번째는 1990년 3당 합당을 통한 유신세력의 집권층 편입, 마지막은 김영삼 문민개혁의 실패에 따른 반사효과다.

“철학빈곤이 낳은 퇴행적 현상”

당시 보수세력이 박정희를 호명하는 데 주력했던 것은 박정희가 문민·민주정부의 약점을 드러내주는 가장 효과적이고 대중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념과 철학이 빈곤한 한국 보수주의자들은 대처나 레이건 같은 새로운 보수주의 전사를 만들기보다, 김영삼의 문민개혁과 김대중·노무현의 민주개혁을 좌절시킬 목적으로 박정희를 영웅화하는 복고주의 전략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단언한다. “신드롬의 주인공인 박정희는 독립적 자아를 형성하지 못한 못난 자식,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발견하고 꾸며낸 상상의 구성물이다.”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들머리에 붙어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생전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A href="mailto:wjryu@hani.co.kr">wjryu@hani.co.kr</A>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들머리에 붙어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생전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이렇게 탄생한 ‘상상의 구성물’의 핵심으로 육박해 들어간다. 임 교수가 볼 때 박정희는 이데올로기보다 실익을 중시하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데 능숙한 ‘마키아벨리적 근대군주’이자, ‘친정치적 행동주의 장교’였고, 일본 육사교육과 장교생활을 통해 군국주의를 내면화한 ‘메이지 근대화 모델의 수제자’였다. 이런 박정희의 집권시기에 한국이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것은 사실인데, 문제는 ‘박정희 신화’가 이 시기의 성취를 박정희 개인의 역량 덕으로 돌려버린다는 사실이다. 이런 편향은 ‘권위주의적 근대화론’이나 ‘발전국가론’ 같은 학적 담론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농지개혁과 한국전쟁을 통해 지주계급이 몰락하면서 한국의 계급구조가 산업화에 적합한 형태로 형성돼 있었다는 ‘구조적 설명’과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따른 파격적 원조와 지원을 강조하는 ‘지정학적 행운론’ 등의 반박이 이미 이뤄졌음을 강조한다.

‘3당 합당’등 통해 신드롬 확산

요컨대 박정희 집권기의 성장은 “국가-시장 간 적절한 분업구조 형성과 효과적인 발전전략 같은 내생적 조건에, 도시중심 산업화에 친화적인 계급구조 형성, 국제분업구조 변화와 미국의 자비로운 헤게모니 같은 외생적·우연적 조건 등 다양한 변수들의 결합으로 가능했다는 설명이 타당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승승장구하던 박정희 체제가 왜 그렇게 허망하게 종말을 맞았냐는 것이다. 임 교수는 “박정희 1인에 의존하는 인치적 권위주의 체제”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그에 따르면 박정희의 통치는 1970년대 후반 2차오일쇼크를 계기로 중화학공업 우위의 축적전략이 위기를 맞고, 이것이 정치위기로 심화되면서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는데, 여기에 미국 카터행정부와의 관계악화가 정권의 대외적 정통성을 약화시킴으로써 총체적 위기로 전환한다.

임 교수는 그러나 당시 박정희에게도 탈출구가 존재했다고 본다. 중국 공산당처럼 권위주의 체제 안에서 후계자에게 권력을 이양하거나, 북한처럼 자식에게 세습하는 것, 그도 아니면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세 가지 모두를 거부했다. 왜 그랬을까. 임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박정희 스스로가 죽음에 이르는 상황까지 권력을 추구하는 홉스형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박정희의 몰락과 유신체제 붕괴는 박정희의 선택이란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