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정책연구회와 <한겨레>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한성대 에듀센터에서 함께 주최한 ‘박정희 시대의 재평가’ 정치분야 토론회에서 임혁백 고려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정희 시대 재평가 토론회] 정치분야
비장미 넘치는 비극의 역사라도 두번째로 재탕되는 순간 우스꽝스런 희극이 되고마는 게 역사의 진리다. 2009년 가을,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희극으로 재연되는 ‘박정희전’이다. 참모진을 대동한 채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이는 지도자의 모습에 훈훈한 감동보다 쓰디쓴 실소를 머금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의 의문은 이렇다. 왜 국민의 외면을 받고 심복의 총에 목숨을 잃은 30년 전 독재자가 향수와 모방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9일 오후 서울 혜화동 한성 에듀센터에 모인 사회과학자들의 의문도 마찬가지였다. ‘박정희 시대의 재평가’라는 이름 아래 모인 이들은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이 전무후무한 역사적 성취였는지, 인권과 민주주의를 희생시킨 박정희의 성장전략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등 ‘박정희 논쟁’의 핵심 논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한국경제정책연구회와 <한겨레>가 함께 주최한 행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산업화에 유리한 계급구조·미국 파격적 원조 작용
경제성장 원인 복합적인데 “박정희 덕분” 왜곡시켜
1978년 총선 야당에 득표율 뒤지는 등 당대평가 외면 “박정희 신드롬은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아버지 콤플렉스’가 낳은 퇴행적 병리현상이다.” 정상호 명지대 교수는 한국 사회를 휘감은 박정희 열풍을 ‘파파보이 콤플렉스’로 규정했다. 박정희가 죽은 뒤 독자적이고 체계적인 보수 이념을 만들어내지도, 박정희에 견줄만한 ‘훌륭한 자식’을 가져보지도 못한 보수세력이 탈냉전과 민주화라는 거시적 흐름에 적응하기보다 ‘위대한 아버지’ 품에 안기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이 박정희 신드롬이란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박정희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생각만큼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점인데, 그 근거를 정 교수는 임기 내내 ‘선거 압력’에 시달렸던 점, 1978년 총선에선 야당인 신민당에 득표율에서 뒤질 정도로 민심 이반이 심각했던 사실 등을 든다. ‘박정희 없는 유신체제’를 꿈꿨던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그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 박정희는 어떻게 부활했을까. 정 교수는 박정희 현상의 확산에는 세 차례의 계기가 존재했다고 본다. 첫번째 계기가 87년 대선국면에서 이뤄진 유신세력(공화당)의 정치세력화라면, 두번째는 1990년 3당 합당을 통한 유신세력의 집권층 편입, 마지막은 김영삼 문민개혁의 실패에 따른 반사효과다. “철학빈곤이 낳은 퇴행적 현상” 당시 보수세력이 박정희를 호명하는 데 주력했던 것은 박정희가 문민·민주정부의 약점을 드러내주는 가장 효과적이고 대중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념과 철학이 빈곤한 한국 보수주의자들은 대처나 레이건 같은 새로운 보수주의 전사를 만들기보다, 김영삼의 문민개혁과 김대중·노무현의 민주개혁을 좌절시킬 목적으로 박정희를 영웅화하는 복고주의 전략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단언한다. “신드롬의 주인공인 박정희는 독립적 자아를 형성하지 못한 못난 자식,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발견하고 꾸며낸 상상의 구성물이다.”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들머리에 붙어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생전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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