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한국전쟁 다도양민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열린 전남 나주시 다도면 복지회관에서 유가족들이 희생자 명단이 적힌 제단에 꽃을 바치고 있다.나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현장] 한국전쟁 다도양민 희생자 합동위령제
“군·경에 죽었든, 좌익한테 당했든 다 억울한 희생자들입니다. 동병상련하던 유족들이 희생자들의 원혼을 합동으로 달래고 화해에 앞장서기로 했어요.” 13일 오전 11시 전남 나주시 다도면 신동리 다도복지회관. 희생자 300여명의 명단을 촘촘하게 써넣은 검은 신위 앞에서 ‘한국전쟁 다도양민 희생자 합동 위령제’가 열렸다.
58년 전 토벌대와 빨치산의 손에 가족을 잃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었던 주민 200여명이 제단에 줄지어 하얀 국화 송이를 바쳤다. 정면의 신위에는 10여개 마을마다 20~30명씩 희생자의 명단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10여가구에 이르는 일가족의 이름이 보였고, 너무 어리거나 신원을 찾지 못한 듯 ‘이안님의 아들’ ‘홍씨’ ‘김ㅇㅇ’ 같은 미완성 신위도 들어있어서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날 행사는 전국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면 단위 좌·우 합동 위령제란 점에서 특히 눈길을 모았다. 유족들은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당시 희생자가 280명에 이른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자 이념과 가해자를 가리지 않고 합동으로 위령제를 열기로 했다.
안병욱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다도면에서는 군·경이 젖먹이를 업은 부녀자를 사살하기도 했고, 빨치산이 우익인사들의 가족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도 했다”며 “60년이 다된 시점에서 참상을 입에 올리는 것이 유족들한테 송구하고 부끄럽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강희락 경찰청장도 대독한 추도사에서 “비록 전쟁 시기였으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참상을 빚은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홍기축 유족회장은 “이제는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희생자의 뜻”이라고 말했다. 총탄 12발을 맞고도 기적처럼 살아난 김미례(79·나주시 다도면 송학리)씨는 “토벌대의 기관총에 핏덩이 아들을 비롯해 시아제·시누이 등 3명을 한꺼번에 잃었다”며 “이 땅에 나같은 불행한 사람이 없도록 전쟁만은 막아야만 한다”고 당부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다도면 일대에서는 1950년 10월~1951년 5월 사이에 176명이 군·경에 의해 희생됐고, 104명이 좌익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나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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