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반민규명위·위원장 성대경)가 내놓은 ‘3차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에는 그동안 수록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어온 인물들 대다수가 포함됐다.
반민규명위 관계자는 이날 “특별법 규정을 따르는 만큼 보다 정교하고 엄격한 잣대를 댔지만,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가 더욱 가혹해져 친일행위 역시 뚜렷이 늘어났고 수록자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3차 보고서에 수록된 인물들은 일제의 침략전쟁을 적극 도왔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뜨거운 논란을 낳았던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의 경우, 반민규명위는 그가 1943년 11월6일치 <매일신보>에 ‘대의에 죽을 때 황민(皇民)됨의 책무는 크다’는 글을 기고했고, 자신이 교장으로 있던 보성전문학교에 학부모들을 불러모아 학병의 취지를 선전했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김성수는 또 학생들을 징병검사장에 직접 인솔했다는 사실이 당시 신문(<매일신보> 1943년 12월14일치)을 통해 확인됐다.
방응모 <조선일보> 전 사장 역시 일제의 지배와 침략을 찬양한 잡지 <조광>을 발행하는 등 일제에 적극 부역했다고 반민규명위는 밝혔다. 그는 1937년 경성방송국 제2방송에 출연해 “일본 제국은…<중략>…지나(중국)의 배일을 절멸케하여 극동평화를 확립시키려 한다”는 취지의 강연을 했고, <조광>(1942년 6월21일치)에 ‘징병령 실시에 일층 더 감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글을 실어 침략행위를 감쌌다. 1933년엔 고사기관총 구입비용 1600원을 군에 헌납하기도 했다.
고려대, 연희대(현 연세대), 이화여대 등 대학 총장들의 친일행위도 지적됐다.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은 1943년 <매일신보>에 ‘열혈남아이거든 이때를 놓치지 말라’, ‘남자에 지지 않게 황국여성으로서 사명을 완수’(하라)는 글을 기고했다. 또 유진오 고려대 전 총장은 ‘국민총력조선연맹’ 집회에서 지원병 독려 연설을 했고, 백낙준 전 연희대 총장도 ‘조선임전대책협의회’ 결성에 참여했다.
예술 분야에서는 시인 서정주가 ‘징병적령기 아들을 둔 조선 어머니에게’라는 시를 써 지원병·징병 선동에 앞장섰다. 음악가 현제명은 징병제 축하음악회에서 ‘대일본의 가(歌)’를 부르는 등 일제에 협력했다.
만주의 항일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한 조선인 특수부대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백선엽도 명단에 포함됐다.
반면, 논란을 빚었던 작곡가 홍난파는 유족들이 낸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이번 보고서에서 빠졌다.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은 ‘특별법 적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한편, 조선일보사는 이날 성명을 내어 “방응모 선생이 포함된 데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반민규명위의 활동은 ‘후대의 잣대로 격동의 역사를 살아낸 선조들의 삶을 단죄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역사사냥놀이”라고 반발했다. 또 인촌기념회도 “김성수 선생을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포함시킨 것은 비이성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로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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