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택씨가 만든 설치미술 작품 ‘삽질 공화국’은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 그림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의 제호를 모자이크해 풍자적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광주민족미술인협의회
“삽질공화국 작품 있나” 전화에 광주시 철거 지시
국정원법 ‘직무범위’ 위반…광주지부선 “모르는 일”
국정원법 ‘직무범위’ 위반…광주지부선 “모르는 일”
국가정보원이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을 풍자한 미술 작품을 공공전시장에서 철거하도록 광주시에 압력을 행사해 전시가 중단됐다. 이런 행위는 국내외 정보 수집과 내란·외환 수사 등으로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엄격히 제한한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한 것이다.
광주시는 4일 “국정원 광주지부의 한 직원이 3일 오후 3~4시께 시 문화예술 부서와 5·18기념문화관 대관부서에 전화를 걸어 ‘5·18기념문화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대통령을 풍자한 ‘삽질 공화국’이라는 작품이 있느냐. 광주시의 입장은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전했다. 시는 “전화를 받은 뒤 문화관 운영조례를 검토해보니 이 작품의 전시가 전시장 설치 목적에 어긋나고 공공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돼 주최 단체에 철거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광주민족미술인협의회(광주민미협)도 “전시 개막 직전인 3일 오후 5시께 시의 5·18기념문화관 담당 공무원이 찾아와 ‘이 대통령을 비판한 작품을 철거하지 않으면 전시를 계속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며 “이 때문에 전시 이틀째인 4일 전시장 문을 열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전시가 중단된 4일엔 이 대통령이 호남고속철도 기공식에 참석하려고 광주를 방문했다.
문제가 된 ‘삽질 공화국’은 가로 1.2m, 세로 5.5m 규모의 삽 모양 설치미술 작품으로 이 대통령의 얼굴 그림 170여장이 삽날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제호가 삽자루에 모자이크 처리돼 있다. 이 작품의 작가인 김병택(42·전남대 강사)씨는 “막무가내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는 대통령의 행태를 풍자했다”며 “얼굴 사진을 훼손한 것도 아닌데, 미술 작품에 이 정도 풍자도 담을 수 없다니 답답하다”고 한숨지었다.
박철우(55) 광주민미협 대표는 “현재 작품은 전시장에 그대로 전시돼 있으나, 시의 철거 요구로 전시장 문을 열지 못했다”며 “정보기관과 행정기관이 압력을 넣더라도 이 작품을 철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신경진(55) 5·18부상자회장은 “민주주의 가치를 상징하는 5·18기념문화관에 전시된 미술 작품까지 국정원이 검열한다니 기가 막힌다”고 개탄했다.
국가정보원법 3조 1항은 이 기관의 직무를 ‘국외정보나 국내보안정보 수집, 내란·외환 등에 관련된 수사’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11조 1항은 국정원 직원이 ‘다른 기관·단체·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직권남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광주지부 관계자는 “광주시에 전화한 적도 없고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전면 부인했다.
광주민미협은 이달 3~12일 광주 5·18기념문화관에서 전국의 작가 37명의 작품 50여점을 전시하는 ‘江강水원來’ 환경미술전을 열고 있다.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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