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음식점서 실감한 서민경제 ‘혹한기’
직장인 차상용(34)씨는 지난해 말 동료 4명과 ㄱ음식점에서 송년모임을 가졌다. 서울 구로구 온수동에 있는 단골 고깃집이었는데, 거나하게 취해서 계산을 하려다 술이 깰 지경이 됐다. ‘어, 5000원이나 더 나왔네….’
원래 이 집은 계산이 편하다. 연탄불에 구워주는 질 좋은 생고기가 1인분에 5000원이고, 소주 한 병은 2000원이다. 10년 내리 한결같았다. 그래서 차씨는 이 가게를 자주 찾았고, 벌써 6년째 단골이다. 그런데 이 가게가 최근 10년 만에 고기값을 1인분에 1000원, 그러니까 20%나 올린 것이다.
이 가게는 몇 년 전부터 벽에 벽보를 붙여 놓고 손님들에게 ‘가격 인상안 동의’ 여부를 묻곤 했지만, 고객들 손사래에 단념한 게 여러 차례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절차’도 없이 값을 올려버린 것이다. 가게 주인 장금순(60)씨는 “서민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싸고 맛있다며 많이 찾는 통에 그동안 값을 올리지 못했는데, 최근 고기 떼오는 가격이 판매가의 절반 수준으로 올라 감당이 되질 않았다”고 말했다.
가게 주인 장씨는 소주값 인상도 고민하고 있다. 10년째 고수해온 병당 2000원이 위태롭다. 지난해 말 도매가가 병당 1200원으로 올랐는데, 또 추가 인상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구이용 연탄값도 정부 방침에 따라 올해부터 한 트럭(1000장·50만원)에 8만원이나 인상됐다. 난방에 쓰는 도시가스값도 계속 오르고 있다. 장씨는 이렇게 고기값을 올리고도 큰돈을 만지지 못한다고 울상이다. 매출액이 는 만큼 세금도 덩달아 늘어 손해가 날지 모르겠다고 걱정이다.
물가가 다락같이 오르면서 고생하는 건 상인들만이 아니다.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김미영(32)씨는 좋아하는 ‘커피 한잔’도 봉지 커피로 대신할 생각이다. 즐겨찾던 한 외국계 커피전문점이 새해 들어 커피값을 300원씩 올리는 바람에 즐겨마시던 ‘카라멜 마키아토’ 값이 5000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 끼니에 밥값을 두 번 내는 것 같은 부담감이 느껴진다”며 “최근 3디(3D)영화가 나와 영화값도 1만5000원이 넘던데, 피부로 느끼는 물가는 통계 수치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다.
4일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달 식료품 가격 등의 변동폭을 알려주는 생활물가지수가 1년 전과 견줘 3.3% 증가했을 뿐이다.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통계청 자료와 사뭇 달랐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