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기생충 잡는 커피
병원서 커피판매 수익금으로 기생충 연구 후원
서울 홍익대 앞 제너럴닥터 의원. 카페 모양으로 꾸며 환자들을 편하게 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이 가정의학 의원에선 소독약 냄새 대신 커피향이 환자를 맞는다.
“트리파노소마 두 잔 주세요.” 6일 오후 이곳을 찾은 손님들이 낯선 이름의 수제 커피를 주문했다. ‘트리파노소마’는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일대에서 ‘아프리카 수면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이다. 감염된 어린이들은 몇 주에서 몇 년까지 기면·무기력증·뇌수막염 등으로 고통을 겪다 죽음에 이른다. 무서운 기생충을 두 잔 달라고?
이 병원의 트리파노소마는 커피다. 기생충 연구를 위해 오는 3월 아프리카로 떠나는 기생충학자 정준호(25)씨를 후원하기 위해 이런 이름을 붙였다. 4300원짜리 한 잔을 팔아 1000원을 후원금으로 내놓는다.
이러다보니 ‘커피 장사’에 이문이 남을 여지가 없다. 브라질산보다 질이 좋은 에티오피아산 원두를 쓰는데다, 생산 농가에 원가를 보장해주는 ‘공정무역’까지 거쳤기 때문이다. 이 의원의 김승범 원장은 “기대 이상으로 하루 20잔 정도 팔리고 있다”며 “커피의 질이 좋고, 생산 농가에서 혹사당하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자는 취지에 소비자들이 공감해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프리카 등 커피 생산농가한테 돌아가는 몫은 최종 판매가의 0.5%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피 열매를 수확하는 인력의 상당수가 어린이들이기도 하다. 정씨는 “개인적인 연구여서 부담이 적지 않은데 큰 도움이 된다”며 “더 많은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데 손길을 내밀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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