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3개사에 시작·종료 발언까지 ‘주문’…반영은 안돼
국무총리실이 지난 11일 밤 방송된 대전 지상파 방송 3사의 ‘세종시 발전방안 대토론회’에 앞서 사회자의 시작 발언과 질문, 종료 발언 등을 담은 일종의 ‘사전 시나리오’를 방송사 쪽에 제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토론회는 정운찬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11일 오후 6시께 대전문화방송(MBC) 공개홀에서 녹화됐다.
총리실이 작성해 건네준 대본에는 사회자의 ‘오프닝 멘트’와 인사말, 각 토론 주제 및 질문 문항, 시회자의 ‘클로징 멘트’ 등 방송진행 순서와 내용이 상세하게 담겼다.
토론 질문과 관련해선 사회자가 한 참석자를 향해 “세종시 문제로 단식과 삭발까지 하셨는데 발전 방안을 보시고도 여전히 원안 고수 입장이신가요?”라는 질문을 하게 하고 답변을 들은 뒤 총리가 발언하도록 순서를 짜놓았다.
또 자유토론과 관련해서도 질문을 여러 개 예시한 뒤 ‘다음 질문 중 몇 개 유도’라고 명기해 놓았다. 사회자 종료 발언도 “공은 우리 충청인들에게 넘어왔습니다. 이제 우리 충청인들이 선택할 때입니다. 요란한 정치적, 이념적 구호보다는 과연 우리나라와 충청인의 미래에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라고 제시했다.
하지만, ‘총리실 대본’은 실제 방송에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토론회를 주관한 대전문화방송 관계자는 12일 “토론회 녹화에 앞서 총리실 쪽이 자신들이 준비한 대본을 제시해 왔으나 우리는 이를 참고자료로도 삼지 않고 뭐 이런 걸 만드느냐고 코웃음 치고 말았다”며 “토론회는 사전 원고없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 사실이 <오마이뉴스> 보도로 12일 공개되자,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성명을 내어 “이명박 정권의 언론통제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며 “정부는 총리실이 방송 시나리오를 작성해 방송에 개입한 경위를 명백히 밝히고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총리실 세종시 기획단은 “방송사 쪽에서 토론 준비를 위해 발전방안 내용을 반영한 ‘콘티’를 미리 보내달라고 요청해와 설명하는 차원에서 형식을 갖춰 전달한 것일 뿐, 토론회 내용을 통제하려는 뜻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대전/송인걸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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