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신길역 부근의 동네 서점 ‘신동아문고’의 청소년 문학·역사 판매대에는 문학·교양서 대신 중·고생 참고서가 가득하다. 이 서점은 책 판매 매출이 크게 줄어 지난해 가을 문구 코너를 두 배로 늘렸다.
‘벼랑끝 싸움’ 동네서점의 하소연
“대형서점 참고서 판매금지”
사업조정 신청 내 ‘작은 승리’
이달부터 1년반 시한부 통제
“대형서점 참고서 판매금지”
사업조정 신청 내 ‘작은 승리’
이달부터 1년반 시한부 통제
“이제껏 대형서점이 주변에 들어서면 동네 서점들은 망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작은 가능성’이 열렸어요.”
14일 국내 최초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타임스퀘어 교보문고에서 학생 참고서 판매가 중단되자, 양명준(61)씨는 “작은 서점과 큰 서점이 공생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근처 신길역 앞에서 동네 서점 ‘신동아문고’를 36년째 운영하는 책방 주인이다.
이날 교보문고의 조처는 중소기업청이 지난달 말 내놓은 ‘강제조정안’에 따른 것이다. 중소기업청은 서울시서점조합이 지난해 7월 낸 ‘사업조정’ 신청을 받아들여 ‘이번달 1일부터 1년 반 동안 57개 출판사에서 발행되는 참고서를 팔아선 안 된다’는 내용의 조정안을 냈다. 1961년 도입된 ‘사업조정제도’는 대기업이 중소사업자의 상권을 침해하는 것을 제한하는 제도인데, 정부가 강제조정안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보문고 남성호 홍보팀장은 “지난 13일 오후부터 참고서를 매대에서 빼기 시작했다”며 “매출에 타격을 입겠지만 강제조정안에 따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동네 서점 주인들은 ‘참고서 시장’이 마지막 남은 생명줄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동아문고의 양씨는 “문학·비소설 분야를 온라인서점이 차지하면서 20~30대 고객층이 떨어져 나갔고, 학생과 학부모들만 참고서를 사려고 동네 서점에 들른다”며 “그런데 대형서점이 들어서면서 마지막 고객들까지 빼앗아간 상황”이라고 말했다. 많은 동네 서점들은 매출이 계속 떨어지자 문구류까지 팔고 있다.
실제 지난해 9월 교보문고 영등포점이 들어선 뒤, 지난 5개월 동안 영등포 지역 동네 서점들의 매출은 뚝 떨어졌다. 서울시서점조합이 영등포 지역 서점 10곳의 매출량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11월 각 서점의 매출액은 2008년 같은 달에 견줘 평균 20~50%가량 떨어졌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대교서적이라는 작은 서점을 31년째 운영하는 박일출(79) 사장은 “학교 앞이라 참고서 위주로 판매해 왔는데 매출이 35% 정도 줄었다”며 “얼마 전 30년 단골 고객이 새로 들어선 교보문고에서 산 문제집을 여기서 반품할 수 있느냐고 찾아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7년 여의도에 서점이 10곳 정도 있었으나, 지금은 3곳으로 줄었다고 했다.
서울시서점조합의 자료를 보면, 서울 지역의 동네 서점은 2000년 860여곳에서 지난해 380여곳으로 줄어, 모두 480곳이 문을 닫았다. 서울시서점조합 최성관 조합장은 “구로역 인근에 대형서점 ‘리브로’가 들어온 뒤 근처 서점 12곳이 문을 닫았다”며 “교보문고 영등포점 입점으로 부근 13개 서점이 폐업할 처지여서 이번 ‘참고서 판매 중지’와 같은 판매품목 제한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정유경 기자 edge@hani.co.kr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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