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로 불리는 20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이십대 전반전’이라는 책에 담았다. 이 책을 쓴 대학생들이 10일 낮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서 책을 머리 위로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최은정, 원소정, 문수현, 홍지선, 박은하씨.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대학생 5명이 직접 쓴 ‘이십대 전반전’
체념과 불안의 담론 넘어
대안과 희망의 담론으로
취업·비정규직·복지문제…
20대 눈으로 본 한국 현주소 ‘88만원 세대’. 386세대, 신세대, 엑스(X)세대 등 이제껏 다양한 세대론이 등장했으나, 요즘 20대는 유일하게 돈으로 이름이 붙여진 세대다. 88만원 세대란, 2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받거나 받게 될 월평균 임금을 88만원으로 계산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88만원 세대들이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냈다. 서울대 학내언론 ‘교육저널’(부정기 간행물)에서 활동하던 대학생 다섯 명이 또래들의 등록금 마련, 취직 준비 등을 현장에서 살펴보고 대안을 찾아 <이십대 전반전>(골든에이지 펴냄, 1만1000원)으로 묶어냈다. 88만원 세대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당사자인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자화상’을 책으로 엮어낸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들은 대학생들이 학비와 집세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취직 걱정에 시달린다는 점에 먼저 주목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이 학벌사회와 얽혀 고착화되어 있는 한국 사회”를 체감한다고 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미국과 한국 음식점에서 각각 ‘서빙’ 일을 한 적 있다는 글쓴이 문수현(25·영문과 대학원)씨는 “미국이 주문을 ‘부탁’하는 문화라면, 한국에선 시종 부리듯 대하는 경우가 많다”며 “비정규직 서비스업종 노동자를 ‘낮은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대학생들은 비정규직의 숙명인 ‘체념’도 맞닥뜨려야 한다. 글쓴이 최은정(23·독어교육과 4)씨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화상을 입었지만, 동료 중에서 아무도 놀라거나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데 더 놀랐다”고 했다. 기름에 데는 일은 ‘흔한 일’이고,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더욱이 최씨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자녀다. 학비를 면제받지만, 학기마다 최저소득임을 증명해야 했다. “누가 더 가난한지 경쟁하는 것 같았어요. 수급자에서 차상위계층이 될까 두려웠거든요.” 그러나 20대가 마냥 우울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혼자 노력해서는 잘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친 세대’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기에 차라리 출세지상주의에 사로잡혔던 지난 세대보다도 더 큰 ‘연대’의 희망을 갖고 있어요.”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20대가 세대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짱돌’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들은 책 제목도 처음엔 ‘짱돌을 던져주마’로 하려 했다. 하지만 정작 다섯 사람 누구도 ‘짱돌’이 뭔지 제대로 몰랐다. “어렴풋이 투쟁해야 한다는 뜻으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차라리 우리의 투쟁의 방식은 짱돌이 아니라 ‘키보드질’ 아닐까요?”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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