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 리쓰메이칸대 교수
[5·18 항쟁 30돌] 서승 교수의 ‘5·18 진단’
“거의 영광이 아니라 살아있는 주제로 만들어야”
“거의 영광이 아니라 살아있는 주제로 만들어야”
재일동포인 서승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1971년 한국 유학 시절 조작사건으로 투옥돼 ‘비전향 정치범’으로 19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 뒤 지성과 실천을 함께 갖춘 인권의 대변자로 살아왔으며, 지금은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광주항쟁 30돌을 맞아 지난 3일 광주 전남대에서 열린 한-일 심포지엄을 기획한 그로부터 광주항쟁의 현재적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한-일 심포지엄은 어떤 취지로 기획하게 됐나? “광주항쟁은 일본 사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군사독재 아래에서도 저항하는 민중이 있다’는 새로운 인식이 생겨났고, 일본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국가폭력에 맞선 투쟁과 연대에 영향을 줬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광주항쟁에 대해 ‘옛날에 있었던 위대한 사건’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번 기획은 광주항쟁을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오늘의 살아 있는 주제로 만들기 위한 기획이다.” -광주항쟁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광주항쟁은 제국주의에 근거한 식민지 지배 세력과 민중 세력의 대립구도가 분출된 꼭짓점이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이어 온 지배 레짐과 피지배 민중과의 갈등이다. 이런 제국-식민 역사는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문제이고, 모든 나라들이 일본 제국주의를 겪은 뒤부터 한국과 비슷한 길을 걸어야 했다. 광주항쟁과 5월운동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직 광주만이 승리의 역사를 세웠다. 패자가 승자가 되는 위대한 패러독스로 군사적으로는 졌지만 정치·도덕적으로는 승리를 거뒀다. 오랜 투쟁 끝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까지 이끌어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성공과 승리의 역사다. 광주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다.” -광주항쟁의 현재적 의미를 살려가기 위해선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현재 한-일 강제병합 100돌을 맞아 동아시아 역사·인권·평화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뤄졌던 ‘더반선언’처럼 인도주의에 대한 범죄에 맞서고 과거 청산에 나선다는 취지다. 동아시아 각 단체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7월께 공동선언을 낼 것이다. 이런 노력은 30돌을 맞은 광주항쟁과 그 승리의 역사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하다. 광주는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의 과거를 청산하기 위한 아카이브가 되고 연구센터가 되어야 하며, 미래에 살아남는 길을 모색하고 실천해가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과거 항쟁의 역사 속에 나타났던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바탕으로 지금 광주를 ‘공동체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에 동의한다. 광주를 다른 도시와 다른, ‘인간의 삶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 -최근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광주항쟁에서 의미를 찾자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단지 새로운 정권이 등장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근현대사를 관철하는 지배 레짐과의 계속된 싸움 속에서 나타나는 양상이다. ‘친일파는 애국자’라는 도식까지 등장할 정도로 지배 레짐은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재생하고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광주는 기로에 서 있다. 광주항쟁을 영광스런 승리로 박제해 자기만의 문제로 끌어안고 갈 것인지, 외부와의 소통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구심점이 될 것인지.” 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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