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왼쪽)이 2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3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수호 전 전교조 위원장.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감사담당관 회의도 전에 전교조 파면·해임 결정
전교조, 대상·수위 등 미리 적시한 교과부문건 공개
전교조, 대상·수위 등 미리 적시한 교과부문건 공개
교육과학기술부가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밀어붙이면서, 시·도 교육청과의 협의도 없이 사전에 징계 대상과 수위 등을 일방적으로 정했음을 보여주는 문건이 공개됐다. 또 파면·해임 대상자 134명 가운데 70명은 이미 징계시효(2년)가 지나 징계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교과부가 교육공무원임용령이 시·도 교육감의 고유 권한으로 규정한 교사 징계권을 침해한 것은 물론, 징계 대상을 무리하게 부풀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전교조는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노당 가입 등 관련 교사 조치 방안’이란 제목의 교과부 내부 문건을 공개했다.
9쪽 분량의 이 문건에는 ‘향후 일정’ 부분에 “5월19일 시·도 감사담당관 회의를 통해 징계 방향 확정”이라고 적혀 있어, 회의 이전에 문건이 작성됐음을 알 수 있다. 교과부는 지난 23일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무더기 파면·해임 방침을 발표하면서, 19일 열린 시·도 감사담당관 회의에서 징계 대상과 수위 등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건을 보면, 교과부는 ‘조치 방안’에서 직위해제 대상을 118명으로 특정하고, “지체 없이 처분” 등의 표현을 써 징계시기를 못박았다. 징계 대상자는 “기소된 현직 교사 134명과 기소유예자 4명을 포함한 138명”으로 정하고, “법원 판결에 의해 복직된 경우 징계시효 이전에는 징계 가능”이라고 적어 놓았다. 해직자에 대한 ‘사후 징계’까지 거론한 셈이다.
또 교과부는 “기소 처분된 교사 134명 배제징계(파면·해임), 기소유예 처분된 교사 4명 중징계(정직)”로 징계 양정 기준까지 정하고, “이 중 시국선언 관련 징계 대상 교사 51명은 양정 가중”이라고 원칙을 명시했다. 여기에 △표창 감경 또는 정상참작 감경 처분 금지 △의원면직 처리 금지 등 ‘징계 추진 시 유의사항’까지 제시했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문건을 보면 교과부가 징계 관련 모든 사항을 사전에 정해 놓고, 시·도 교육청 감사담당관 회의를 열어 이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신인수 변호사도 “교원 징계권자는 법적으로 엄연히 교육감으로 교과부는 징계를 지시할 수 없으며, 징계 양정 기준이나 징계 수위를 정하는 것도 명백한 월권행위”라고 지적했다.
또 교과부가 발표한 파면·해임 대상자의 절반을 넘는 70명은 이미 징계시효가 지난 것으로 확인됐다. 엄 대변인은 “파면·해임 대상자 134명의 검찰 공소장을 하나씩 확인해 보니, 징계시효 이전에 당원활동을 중단했다는 점이 명시돼 있는 사례가 70명이나 됐다”며 “이는 선거를 앞두고 졸속으로 징계 방침을 마련하면서, 교과부가 최소한의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난영 교과부 교원단체협력팀장은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 초안자료를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교과부가 징계 수위를 결정하거나 지시·요구한 바 없고, 시·도 교육청 감사담당관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해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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