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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투사회보’ 쓴 시민군의 일생

등록 2010-05-26 22:12수정 2010-05-26 23:40

박용준 열사
박용준 열사
박용준 열사 평전 ‘5월의 불사조’ 책 출간




30년 전 오늘 광주에서 한 청년이 쓰러졌다. 저격병은 스물다섯 젊은이의 얼굴과 가슴을 겨냥했다. 무심한 총탄은 해맑았던 그의 웃음을 조각내고 지나갔다. 그가 떠난 건물 창가에는 손때묻은 하모니카 하나만이 덩그렇게 남았다. 학살 이후 모여든 이들은 그가 돌아갈 집조차 없었다며 속울음을 삼켰다.

 광주와이더블유시에이(YWCA)는 26일 광주시 유동 대강당에서 5·18 시민군이었던 박용준 열사의 평전 <5월의 불사조> 출판기념회를 열고, 대학생 6명한테 ‘박용준 장학금’ 100만원씩을 전달했다.

 박씨는 1980년 5월27일 새벽 광주시 동구 대의동 옛 광주YWCA에서 계엄군의 진압작전에 맞서 싸우다 산화했다. 고아였던 그는 어린 시절 광주영신원과 무등육아원 등지 복지시설에서 성장했다. 60년대 후반 중학교 졸업 때는 1400원을 내지 못해 졸업장을 받지 못했고, 야간 실업고 재학 때는 구두닦이와 신문팔이로 학비를 벌어야만 했다. 고교 2학년 때 광주YWCA 신협에서 일자리를 구하자 사무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며 생활했다.

 가난과 고독의 아픔을 독서로 달래는 문학청년이던 그는 신협 직원 김영철(시민군 기획실장·98년 작고)씨와 의형제를 맺고 인근 양서조합의 청년 회원들과 교류하면서 사회의식에 눈을 뜨게 됐다. 그는 고교 졸업 뒤 광주의 방직공장지대였던 광천동에서 시민아파트의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주민운동과 노동자의 의식을 일깨우는 들불야학에 참여했다.

 5·18 민중항쟁 때는 진실을 알리던 시민신문 <투사회보>를 제작하는 데 헌신했다. 그는 필체가 좋았던 덕분에 고 윤상원(시민군 대변인) 열사가 써온 내용을 등사지에 필경하는 작업을 도맡았다. <투사회보>는 호마다 1만~3만장을 발행했고, 이를 등사하려면 같은 내용을 20여번은 되풀이해 써야만 했다. 이런 헌신으로 당시 광주시민은 공동체를 유지했고, 그의 필체는 <투사회보>에 영원히 남겨졌다.

 이춘희 광주YWCA 국장은 “해마다 5월이면 5월포럼과 추모예배를 열어 ‘사랑의 밀알’이었던 그를 기리고 있다”며 “사망보상금 1억2000만원을 종잣돈으로 해마다 대학생 4~6명한테 장학금을 전한다”고 말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사진 광주YWC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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