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치는 판촉전화’ 그냥 참아야 하나요
어느 소비자의 ‘인터넷 전화 가입거절’ 수난기
싫다해도 1년간 끊임없이 하루에 2~3번씩 걸려와
SK·방통위·권익위·공정위…‘소관 아니다’ 떠넘기기
싫다해도 1년간 끊임없이 하루에 2~3번씩 걸려와
SK·방통위·권익위·공정위…‘소관 아니다’ 떠넘기기
부산에 사는 박하경(47)씨가 에스케이(SK) 브로드밴드 쪽에서 ‘집전화를 인터넷전화로 바꾸겠느냐’는 권유 전화를 처음 받은 것은 지난해 9월께였다. 박씨는 ‘한두 번쯤 올 수 있는 판촉 전화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거절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이후 박씨네 집전화로 “가입비를 1000원으로 해주겠다”, “시내외 요금이 같다”는 등 상담원의 가입 권유 전화가 이어졌다. 박씨한테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인천의 지역번호(032)가 달린 전화도 잇따라 걸려왔다. 자동응답전화가 오기도 했다.
‘대형 통신사의 횡포’에 화가 난 박씨는 발신자 표시가 되는 집전화를 이용해 지난 3월부터 에스케이 브로드밴드 쪽에서 걸려오는 전화번호와 내용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이후 에스케이 브로드밴드 본사에 직접 해당 영업점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지금 집전화를 그대로 쓸 생각이고, 집에 환자가 있으니 전화를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회사 쪽은 “무작위 텔레마케팅을 하지 못하도록 영업점을 관리하고 있지만, 본사에서 사전에 차단하기가 어렵다”며 “사후 추적으로 징계나 영업권 박탈 등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주시고, 앞으로는 연락이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서울이나 경기·인천 쪽에서 다른 낯선 번호로 가입 권유가 계속됐다. 참다못한 박씨는 그때부터 관련 기관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시작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국민신문고, 국민권익위원회, 중앙전파관리소에 민원을 넣었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 하지만 어느 기관 하나 책임지고 해결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관할이 아니라며 떠넘기기 바빴다.
방통위는 박씨에게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의 소관부처는 공정거래위원회이니 그곳에 상담을 해야 하며, 방통위에는 구매권유 광고 수신거부의사 등록시스템(nospam.go.kr)을 이용하라”고 일러줬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연결된 중앙전파관리소 쪽은 “음성통화를 이용한 텔레마케팅은 공정위 소관이고, 자동응답전화 방식의 영업은 방통위 소관”이라며 “한국인터넷진흥원 불법스팸대응센터(국번 없이 118)에 신고를 했으니, 해당 누리집(spamcop.or.kr)에서 진행 상황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7월 가입 권유를 하는 업체를 정확하게 찾을 수 없어 조처를 취하기 어렵다고 알려왔다. 공정위는 박씨에게 “에스케이 브로드밴드 쪽에서는 ‘박씨가 알려온 전화번호는 자신들의 유통망(대리점) 리스트에 올라 있지 않은 번호’라고 답을 해왔다”며 “(공정위는) 해당 전화번호를 등록한 사업자를 조회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해당 업체를 특정할 구체적 자료(업체명·주소 등)을 보완해 신고해달라”고 통보했다.
박씨는 “피해를 본 사람이 결국 전화를 건 영업점의 이름이나 주소까지 찾아내서 알려달라는 이야기인데, 사실상 힘없는 개인은 그냥 당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소연했다. 박씨는 “정부가 영업점의 불법행위를 사실상 눈감고 있는 대기업을 규제해야 근본적인 해결이 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7월 초까지 박아무개씨가 전화가입 권유를 받은 내용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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