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어 테스트 드라이버들인 김상훈, 장진석, 손승섭, 권영후, 김재철(왼쪽부터)씨가 지난 13일 충남 금산군 제원면 ㅎ타이어 테스트장에서 시제품 타이어 주행시험을 마친 뒤 시제품 타이어 더미를 배경으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타이어 테스트 드라이버의 세계
도로 특성별 성능한계 시험
3년간 사전훈련 ‘달인’ 경지
도로선 80㎞/h 이하 ‘소심남’
도로 특성별 성능한계 시험
3년간 사전훈련 ‘달인’ 경지
도로선 80㎞/h 이하 ‘소심남’
‘끼~익!’
활주로처럼 뻗은 지(G) 트랙을 달리던 승용차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시속 200㎞로 달리던 차가 급제동하며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자, 몸이 왼쪽으로 쏠리고 전면 유리창 밖으로 도로와 산이 45도로 기울어져 스쳐갔다. 타이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난 13일 오전 충남 금산군 제원면 ㅎ타이어 시제품 테스트장. 차량 5대가 전조등을 밝히고 트랙을 달렸다. 시험구간에 들어선 차들은 굉음을 내며 달리다 급제동하기를 반복했다. 뒤집어질 듯 휘청거리던 차량들은 원형 스키드 마크를 남기고 제 차선으로 복귀했다.
“카운터 스티어링 테스트입니다. 차량이 한쪽으로 미끌어질 때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조작해 차체를 바로잡는 기능을 시험하는 거죠. 장애물을 갑자기 피하려 할 때 타이어가 적합한지를 살피는 겁니다.”
손승섭(39·연구생산기술본부 실차테스트팀) 과장은 “이 시험을 통해 위급 상황에서 타이어가 운전자의 핸들 조작에 따라 기능하는지, 얼마나 단거리에서 제 차선으로 복귀하는지, 소음·진동 및 파손·마모 정도 등 타이어의 성능 한계를 알아낸다”고 설명했다. 종합경기장처럼 만들어진 지 트랙은 직선 구간 1.2㎞에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와 유럽 등 세계 각국의 100여개 도로가 특성대로 재현돼 있어 내수용·수출용 타이어의 성능을 확인할 수 있다.
지 트랙 아래 쪽에는 빗길 성능 시험장(WET-트랙)이 있다. 곡선인 이 시험장은 길 양쪽에 빼곡하게 설치된 살수장치에서 물을 뿌려 빗길을 재현한다. 가운데 원형 트랙은 코팅이 돼 있어 특히 미끄러운 빗길 테스트를 할 수 있다.
시제품 성능 시험은 실차테스트팀 소속 17명의 테스트 드라이버가 맡는다. 이들은 전문 레이서가 아니라 기계공학·자동차·물리 등을 전공한 공학도 출신 사원들로, ‘밥은 굶어도 차 없이는 못 산다’는 자동차 마니아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장진석(36) 대리는 “공통점은 대학 동아리에서 자작 자동차를 만들거나, 계기판이나 차체 부분 사진으로도 차종과 제원 등을 줄줄이 꿰는 이들”이라고 소개했다.
팀원에 선발되면 3년여 동안 기초교육과 운전기술, 감성평가 방법 등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쳐야 위험 회피기술이 원숙해지고 혼자서도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팀 막내 김상훈(34)씨는 뉴질랜드 유학 시절 국내에 흔치 않은 스포츠카를 보고 자동차에 빠졌다. 그는 “기초교육을 받아 보니 운전석 의자에 엉덩이와 어깨 밀착시키고 두 팔을 뻗었을 때 핸들 위쪽에 손목이 걸려야 올바른 운전 자세”라며 “등을 90도 가까이 세워야 하니 초보운전 같지만 피로를 줄이고 돌발 상황에서 제대로 운전하려면 이 자세가 가장 좋다”고 귀띔했다.
이들이 시험하는 시제품은 연간 2만여개. 새 기술을 적용한 자체 개발 타이어와 자동차 회사들이 새차에 장착하려고 요구하는 맞춤형 타이어를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설계가 표준화돼 있어 처음으로 시험 제작한 ‘초도품’부터 1~3차 시제품을 평가하는 정도면 시험이 끝난다. 가벼워 연비가 좋으면서 핸들링과 승차감이 우수하고, 뛰어난 제동력에 소음이 적어야 최고의 타이어인데, 핸들링을 좋게 하면 승차감이 떨어지고, 무게를 줄이면 연비는 좋지만 소음과 제동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예전에는 황당한 시제품도 있었다고 한다. 김재철(35) 과장은 “운전하면서 몸으로 느끼고 귀로 들어 평가하는데, 한계 상황에서 타이어 기능을 실사한 뒤 결과를 계량화해 보고서를 낸다”고 말했다.
하루에 400~1000㎞를 달리다 보면 녹초가 되고, 사고로 다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사고로 시험 차량를 폐차하고 석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진 팀원도 있다. 테스트 과정에서 포르쉐를 포함해 연간 1~2대를 폐차할 정도로 사고와 부상 위험이 높아 생명보험 등에 가입하기 어렵고, 평가를 앞두고는 금주해야 한다. 훈련과 시험을 위해 해외 출장이 잦아 전원이 참석하는 회식은 꿈도 못꾼다. 반면 세계 각국의 명차는 물론 1~2년 뒤 발표될 새차를 타는 재미도 쏠쏠하다.
트랙에서는 신기에 가까운 운전 솜씨를 뽐내지만, 도로를 주행할 때는 ‘소심남’이 된다. 최고참 전규하(50) 수석연구원은 고속도로에서도 시속 80㎞ 이상은 달리지 않는다고 했다.
장진석 대리는 “안전성과 경제성에 편안함을 더한 타이어 개발이 모든 테스트 드라이버들의 꿈”이라며 “제때 타이어를 교환하고 공기압이 적절하면 제동과 핸들링, 연비, 승차감이 모두 좋아진다”고 조언했다. 권영후(31)씨는 “안전 운전의 절반은 타이어, 나머지 절반은 규정과 안전띠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금산/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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