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비리를 고발했다 파면당한 김형태 전 양천고 교사가 지난 3월 검찰에 엄정 수사를 촉구하며 서울남부지검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형태씨 고발 2년 외면하다
검찰, 계좌추적 등 수사나서
재단 이사장 횡령혐의 기소
검찰, 계좌추적 등 수사나서
재단 이사장 횡령혐의 기소
김형태(45·서울시 교육의원)씨가 자신이 교사로 재직하던 서울 양천고의 재단 비리와 싸움을 시작한 것은 2008년 4월이었다. 당시 김씨는 서울시교육청에 정아무개(77) 재단 이사장 등이 학교 돈을 횡령하는 등의 방식으로 수십억원을 챙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가 내놓은 비리 의혹 근거 자료만 에이(A)4 용지 300장 분량이었다.
학교 공사비 부풀리기, 가짜 동창회비 징수, 학교운영회 회의록 조작, 체육복 불법판매, 도서실비 부당징수, 기간제 교사 허위 등록을 통한 교육청 보조금 챙기기 등 ‘종합세트’ 수준의 의혹들이 제기됐다. 하지만 시교육청은 민원감사를 통해 “부당 취득한 돈을 환원하고, 잘못된 부분을 개선하라”며 관련자들에게 경고·주의를 주는 선에서 결론을 내렸다.
비리 관련자들에게 경징계가 내려졌지만, ‘공익 제보’의 대가는 혹독했다. 곧바로 ‘보복성 징계’가 시작됐다. 김씨는 이듬해인 2009년 3월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파면 처분됐다. 시교육청이 감사를 시작한 뒤 그가 ‘내부 제보자’라는 사실이 학교 쪽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3개월 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통해 복직이 이뤄졌지만, 학교는 5일 만에 ‘1인 시위 학생 선동’ 등의 이유로 다시 김씨를 파면했다.
한 교사의 바위치기 식 싸움에 수사기관마저 고개를 돌렸다. 김씨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를 통해 서울남부지검에 양천고 비리 의혹을 고발했지만, 사건을 맡은 양천경찰서는 한 차례 고발인 조사를 한 뒤 3개월 만에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이라며 사건을 종결했다. 서울고검에서도 정 이사장이 개인 벌금 수백만원을 학교 돈으로 낸 것 등 일부 혐의만 적용해 기소유예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김씨는 ‘1인 시위’ 손팻말을 들고 218일간이나 남부지검과 양천고 앞을 지켰고, 관련 언론 보도가 120회 넘게 나왔지만 시교육청과 수사기관은 요지부동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싸움은 김씨가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교육위원으로 당선되고 난 뒤 지난 6월28일, 남부지검이 양천고에 대한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에 들어가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검찰은 지난 3일 정 이사장에 대해 “사실상 자신이 설립·운영하는 급식업체를 통해 급식대금을 빼돌려 5억7000만원을 챙겼다”며 불구속 기소했다. 정 이사장은 학교 공사를 맡은 건설업체한테서 6500여만원을 받고, 학교 돈 4600만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김씨가 첫 제보했던 내용이 2년여 만에 고스란히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김씨는 “2년여간 사학 비리의 진실 규명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던 시교육청과 경찰, 검찰이 늦게나마 급식 비리 등을 확인한 점을 평가하고 싶다”며 “하지만 동창회비 등 여전히 남아 있는 의혹의 실체를 밝혀 학생·학부모·교사·교직원들이 교육 자체에만 전념할 기틀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남부지검 관계자는 “양천고 비리처럼 의혹이 있어도 실제 증거를 찾는 일이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수사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라 장기간 포기하지 않고 수사를 해서 비리를 찾아낸 경우”라고 해명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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