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대학원생 5명 방담
카이스트 대학원생 5명 방담
4월은 아름답지만 잔인하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카이스트 캠퍼스도 그렇다. 학생회실에서 만난 한 학생은 “농활 준비할 때인데…”라며 말꼬리를 흐렸고, 어떤 동아리방 회원들은 “방해받고 싶지 않다”며 아예 문을 걸어 잠갔다. 캠퍼스에서 마주친 청춘들은 할 말이 있어 보였으나 쉽사리 속내를 꺼내 보이진 않았다. 12일 밤, 카이스트 교내 한 건물에서 대학원생 다섯 명과 어렵사리 마주앉았다. 서남표 총장 취임 뒤 학부에 차등등록금제 등이 도입된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원에도 채찍질이 시작됐다. 일정 기한 안에 석·박사과정을 끝내지 못하면 한 학기당 약 200만~400만원을 내야 하는 ‘압박’ 등이다. 카이스트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이상 생활을 해온 이들은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했다. 지도교수가 학생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현실에서 학교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 잇따른 자살사건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ㄱ : 자살 배경엔 복잡한 원인이 있겠지만, 학교 분위기가 상당히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학부를 포함해 10여 년간 카이스트에 있었는데, 조교 일을 하면서 만나는 학부생들은 예전과 다르다. 차등등록금제 등이 없었을 땐 학문에 열정이 큰 친구들이 많았다. 시(C) 학점밖에 못 받는 과목일지라도 도전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학사경고 받는 학생이 옆에 있어도 학점을 소재로 농담을 할 수 있었다. 그 학생이 특정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성적을 받았을 수도 있으니까. 요즘 내가 만나는 학부생들은 배울 건 많아도 학점에 도움 안 되는 과목이라면 피한다. 성적이 떨어지면 돈을 내야하는 부담도 있지만, 친구들이나 부모님의 시선을 참기 힘들어 한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무너지는 게 느껴진다.
ㄴ : 숨진 학생 중엔 입학 사정관 제도로 들어온 이도 있었다. 그런데 웃기지 않나. 입학 사정관제는 성적 기준이 아니라 특정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을 뽑겠다는 건데, 막상 학교에선 뽑아놓고 성적 안 좋으면 등록금 내라고 한다.
ㄷ : 성적이 안 나오면 노는 거고 세금 낭비라는 논리가 많은데 그런 시각의 보도는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과학을 이끌어갈 인재를 뽑아놓고 장기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아니고 6개월 단위로 평가해서 성적이 안 나오면 세금 낭비한다고 할 수 있는가. 예전엔 특별한 일 없으면 휴학 잘 안 했는데 지금은 힘들다고 휴학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
- 서 총장 취임 뒤 생활이 어떻게 변했나? 총장 정책에 찬성하는 이들도 있다.
ㄹ : 대학원 ‘연차제한제’는 모든 분야의 박사과정을 일괄적으로 4년 안에 끝내지 않으면 돈을 내야하는 이상한 제도다. 돈으로 압박하니 학생들을 일찍 졸업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교수마다 졸업시키는 기준도 다르고 부작용이 많다. 내 경우 석사 때 연구 주제를 바꾼 탓에 1년을 더했지만 큰 부담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엄두를 못 낸다. 그럴 시간도 안 주고. 그렇게 하면 ‘노는 학생’이 돼버리니까. 4년 안에 끝낼 수 있는 걸 고르고 고른다. 쉬운 걸로.
ㄱ : 좋은 연구 하려면 도전적인 걸 해야 한다. 이런 연구가 꼭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얼마 걸릴지 모른다는 건 확실하다. 그런 불확실성에 도전하기가 꺼려진다. 대학원 결정할 때 유학을 갈까 고민하다가 학풍도 마음에 들고 커리큘럼도 수준이 높아 카이스트를 택했다. 학비도 없고 열정을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이런 분위기가 대학원 초반까지도 유지됐지만 서 총장이 오고 난 뒤 정말 많이 바뀌었다. 우리 연구실은 세계 최고 수준, 창의적인 연구를 추구하는데 그런 건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협력,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념에서 나온다. 경쟁시키는 게 도움이 되는 면도 있지만, 굉장히 앞서가는 연구를 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열정을 뺏어간다.
ㄴ : 돈이 많거나 영어 잘하는 학생들에겐 서 총장 정책이 문제없을 거다. 개인의 사정에 따라 총장 지지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총장은 (자신을) 반대하는 학생들은 안 본다. 이게 문제다. ㄷ : 물론 총장 정책 찬성하는 학생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등록금 인하, 차등 수업료 폐지, 연차초과자 수업료 부담 경감을 놓고 실시한 학생 총투표 결과를 보면, 69% 투표율에 96% 찬성이었다. 그러나 학교 쪽은 이런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이익을 당할까 봐 대외적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총장 정책 반대하는 교수들 많다. 총장 마음대로 하는데, 견제하는 장치가 아무것도 없다. 지난주 열린 학생과의 간담회와 똑같은 모임이 지난 2008년에도 있었다. 당시 학생들은 “이러면 되느냐”고 강하게 의견을 개진했는데, 시간이 늦어지자 총장이 “애니웨이 굿나잇”하고 퇴장하더라. 이번에도 그런 분위기였다. - 지금의 사태가 어떻게 해결됐으면 좋겠나 ㄴ : 서 총장이 이 사태를 해결하고 나가야한다. 누가 해결하나. 이 기회에 학생들과 소통하고 제도개선 약속하고. 사퇴는 안 하는 방향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서 총장이 끝내 바뀌지 않는다면 물러나는 게 낫다. ㄷ : 서 총장이 지금 사태를 해결하기 어려울 거다. 그런데 이사회가 후임 총장을 뽑으니, 후임도 서 총장과 똑같은 철학을 가진 분이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ㄹ : 비판받는 제도들만이라도 당장 수정됐으면 좋겠다. 총장이 지금처럼 한다면 없는 게 나은데, 태도가 변할지는 회의적이다. 사실 이번 사태가 총장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직교수들도 총장 뜻에 다 동조했다. ㅁ : 지금은 여론몰이가 너무 심한 상황이라 총장 사퇴 입장까지는 아니다. 학생들 뜻을 좀더 들어주는 방향이었으면 좋겠다. ㄱ : 이런 문제 터지면 근본적인 시스템은 개선하지 않고 ‘너희가 힘들면 찾아와서 얘기해, 심리상담 센터 차려줄게, 힘들어도 버텨야지’와 같은 말을 하는데 이런 걸로는 답이 안 나온다. 제도를 바꾸려면 사람부터 바꾸는 게 가장 쉬운 첫걸음인 것 같다. 대전/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ㄴ : 돈이 많거나 영어 잘하는 학생들에겐 서 총장 정책이 문제없을 거다. 개인의 사정에 따라 총장 지지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총장은 (자신을) 반대하는 학생들은 안 본다. 이게 문제다. ㄷ : 물론 총장 정책 찬성하는 학생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등록금 인하, 차등 수업료 폐지, 연차초과자 수업료 부담 경감을 놓고 실시한 학생 총투표 결과를 보면, 69% 투표율에 96% 찬성이었다. 그러나 학교 쪽은 이런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이익을 당할까 봐 대외적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총장 정책 반대하는 교수들 많다. 총장 마음대로 하는데, 견제하는 장치가 아무것도 없다. 지난주 열린 학생과의 간담회와 똑같은 모임이 지난 2008년에도 있었다. 당시 학생들은 “이러면 되느냐”고 강하게 의견을 개진했는데, 시간이 늦어지자 총장이 “애니웨이 굿나잇”하고 퇴장하더라. 이번에도 그런 분위기였다. - 지금의 사태가 어떻게 해결됐으면 좋겠나 ㄴ : 서 총장이 이 사태를 해결하고 나가야한다. 누가 해결하나. 이 기회에 학생들과 소통하고 제도개선 약속하고. 사퇴는 안 하는 방향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서 총장이 끝내 바뀌지 않는다면 물러나는 게 낫다. ㄷ : 서 총장이 지금 사태를 해결하기 어려울 거다. 그런데 이사회가 후임 총장을 뽑으니, 후임도 서 총장과 똑같은 철학을 가진 분이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ㄹ : 비판받는 제도들만이라도 당장 수정됐으면 좋겠다. 총장이 지금처럼 한다면 없는 게 나은데, 태도가 변할지는 회의적이다. 사실 이번 사태가 총장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직교수들도 총장 뜻에 다 동조했다. ㅁ : 지금은 여론몰이가 너무 심한 상황이라 총장 사퇴 입장까지는 아니다. 학생들 뜻을 좀더 들어주는 방향이었으면 좋겠다. ㄱ : 이런 문제 터지면 근본적인 시스템은 개선하지 않고 ‘너희가 힘들면 찾아와서 얘기해, 심리상담 센터 차려줄게, 힘들어도 버텨야지’와 같은 말을 하는데 이런 걸로는 답이 안 나온다. 제도를 바꾸려면 사람부터 바꾸는 게 가장 쉬운 첫걸음인 것 같다. 대전/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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