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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예술적 ‘하의 실종’ 백남준이 종결자였다

등록 2011-04-17 15:13수정 2011-04-17 15:29

당시 한겨레에 실렸던 사진 설명. 10일 새벽(한국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 참석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씨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하려는 순간 갑자기 바지가 흘러내리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클린턴 대통령이 백씨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워싱턴/청와대사진기자단
당시 한겨레에 실렸던 사진 설명. 10일 새벽(한국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 참석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씨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하려는 순간 갑자기 바지가 흘러내리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클린턴 대통령이 백씨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워싱턴/청와대사진기자단
[사진마을] 바로가기
클린턴 앞 바지 스르륵, ‘부적절한 관계’ 꼬집는 ‘의도적 실수’
나훈아도 부적절한 소문·기사에 기자회견 자청해 “벗을까요?”
최근 몇 달간 스포츠신문과 그에 준하는 매체들을 보면서, 특히 온라인 기사에선 더욱더 기승을 부리는 단어를 발견했다. 포털의 검색어 순위에도 사흘이 멀다 하고 오르내린다. 이름하여 ‘하의실종’이 그 단어다. 처음엔 ‘하의리스’라고 쓰더니 요즘은 ‘하의실종’으로 굳은 것 같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연예인들의 패션에서 시작한 것 같은데 스포츠 스타, 야구장과 농구장의 치어리더까지 하의실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곤 한다.

  

 ▶ 여성 연예인에서 시작해 치어리더까지…황색언론 부추겨

이런 제목을 붙인 사진이 올라오면 금세 클릭 수가 장난이 아니게 늘어난다. 이런 제목을 염두에 두고 기사를 쓰는 기자나 사진을 찍는 기자는 말할 것도 없고 잽싸게 제목을 붙이는 편집기자들이 순서상 가장 먼저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들이 그런 글과 사진을 올리면 클릭을 하는 누리꾼들이 뒤를 따른다. 조회 수와 방문자 수를 늘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라 변명하지 말아야 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기사가 있으니 본다”, “보니까 기사를 쓴다”는 식의 핑계를 댈 일이 아니다. 연예인이든 보통 사람들이든 그들의 하의를 실종 시켜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13년과 3년 전에 이미 하의패션의 종결자와 선구자가 있었다. 13년 전의 주인공은 ‘자랑스럽게도’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다. 1998년 6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가 놀랍게도 미국 백악관에서 하의실종을 몸소 선보였다. 더욱 놀랍게도 그 바로 옆에는 현직 미국 대통령 클린턴이 있었다.

사진에서 보듯 중요부위는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설명에서 보듯 해프닝이란 단어가 있었지만 당시 신문사에선 모두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행위예술가였던 백남준은 클린턴을 조롱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무렵 클린턴은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성관계가 폭로되어 세계적인 망신거리가 되고 있었다. 백남준의 바지 사건은 의도적 실수로 짐작되었다. 바지 속엔 아무 속옷이 없었다. 한국의 청와대라면 큰일이 났을 법한데 미국 백악관에선 해프닝으로 넘겼다. 저명한 예술가이며 건강이 좋지 않았던 백남준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가볍게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빵 터졌을 것이다. 백남준의 의도는 뻔해 보였다.

당시 한겨레신문에 실렸던 사진설명. 가수 나훈아가 25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당시 한겨레신문에 실렸던 사진설명. 가수 나훈아가 25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일본 야쿠자가 신체 주요부위 위해’ 설 꼬리에 꼬리 물어


3년 전인 지난 2008년에 등장한 하의실종의 선구자는 역시 한국인이었다. 그때엔 미수에 그쳤다. 주인공은 역대 최고의 트로트가수 나훈아. 최근의 아이돌 신드롬과 비교가 되지 않는 카리스마의 소유자며 원조 오빠부대의 장본인인 그가 서울의 유명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일본 야쿠자가 나훈아의 신체 주요부위를 위해했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당사자는 언론들의 선정적 기사에도 침묵을 지키다가 마침내 2008년 1월 25일 수백 명의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의 건강은 아무 이상이 없다” 는 한마디면 족할 일이었는데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래 마이크를 잡았고 점차 격앙된 목소리로 변했다. 마침내 그는 단상 위로 올라가 허리띠를 풀며 일갈했다. “바지 벗어 보여드릴까요?”였던 것 같다.

기자들은 술렁거렸다. 그들이 토끼몰이해온 사냥감이 궁지에 몰리면서 이빨을 드러낸 것과 다름없었다. 원래 사자였다가 구석에 몰린 쥐가 될 뻔했던 나훈아는 이 순간 다시 사자로 부활했다. 현장의 기자들은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소문을 부풀리던 시청자, 독자들도 뜨끔했다. 어둠 속에서 ‘나훈아 중요부위 절단설’을 클릭하고 퍼뜨렸던 수많은 누리꾼들은 “아니면 말지 저럴 필요까지 있나”라는 말을 하고 싶었겠지만 조용히 없던 일로 덮어버렸다. 바지는 내려가지 않았고 나훈아는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했다.

“한 일이 없어 해명할 일이 없었다. 언론이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 펜으로 나를 죽였다” 기자회견은 끝이 났고 당시 페스트나 구제역처럼 퍼지든 젊은 여자 연예인들을 둘러싼 살인적인 루머성 기사도 한동안 잠잠해졌다.

보시다시피 이미 오래전에 하의실종을 둘러싼 한국의 두 남자스타가 있었으나 그 소중한 교훈을 깨닫지 못한 이 시대 한국의 언론은 누리꾼을 핑계삼아 여성들의 하의에 목을 매고 있다. 예술꾼 백남준의 객기가 새삼 그리워진다. ‘싸나이’ 나훈아의 객기도 다시 떠오른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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