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서초구의 한 주거형 오피스텔에서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샤워 칸막이가 저절로 깨진 모습.
샤워부스·출입문 등 잇단 파손…KS제품도 불안
건설사, 치료·수리비 주고 사고예방엔 나몰라라
건설사, 치료·수리비 주고 사고예방엔 나몰라라
지은 지 1년 정도밖에 안 된 대형 건설사 아파트(경기도 안양시 소재)에 사는 주부 김미선(가명·37)씨는 올해 초 평생 잊지 못할 사고를 당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안방 욕실에서 굉음과 함께 아홉살짜리 아들의 비명이 들렸다. 김씨가 놀라서 뛰어가 보니 ‘강화유리’(일반 판유리에 열처리 등을 해 표면 강도를 높인 유리)로 만들어진 샤워장 칸막이가 저절로 깨져 수많은 파편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김씨는 “사고 뒤 집 구석구석에 있는 유리가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해 불면증에 시달렸다”며 “몇 달 전에도 같은 아파트에서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건설사 쪽에선 아이 치료비와 수리비를 보상해주기로 했지만, 유리 파편이 튀지 않도록 해주는 비산방지필름 부착 등 안전 조처는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은 지 6년 된 서울 서초구 주거형 오피스텔에 사는 주부 박지은(가명·32)씨도 최근 비슷한 일을 당했다. 아무도 없던 욕실에서 천장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 뛰어가 봤더니 샤워부스를 둘러싸고 있는 강화유리 한쪽이 깨져 있었다. 박씨는 “네살배기 아들에게 파편이라도 튀었으면 어찌할 뻔했느냐”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파트 욕실이나 출입문 등에 흔히 쓰이는 강화유리가 외부 충격을 받지 않고 저절로 깨지는 사고(자연파손)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강화유리 자연파손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안전기준 자체가 없다. 아파트를 시공하는 건설사들도 “자연파손이 흔하지 않은 일”이라며 사고 대비책을 외면하고 있다.
강화유리 자연파손의 원인으로는 크게 세 가지 정도가 꼽히고 있다. 우선 유리 원료에 포함된 니켈 황화물이 강화유리를 만들기 위한 열처리 과정 뒤 수축했다가 다시 팽창해 유리가 깨질 수 있다. 유리 내부가 불균등하게 강화되거나, 판유리를 자르는 과정에서 미세한 흠집이 생길 경우에도 자연파괴가 일어날 수 있다. 또 건설사가 시공할 때 강화유리 설치작업을 제대로 못해도 저절로 깨질 수 있다.
유리업계에서는 한국산업규격(KS)을 획득한 강화유리 제품도 자연파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미선씨 집에서 깨진 강화유리도 케이에스 인증을 받았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유리업계 관계자는 “한국산업규격에도 ‘열간유지시험’(heat soak test) 항목을 넣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비용상의 문제로 업체나 건설사들이 반대했다”고 말했다. 열간유지시험은 열을 가해 문제를 일으킬 만한 제품을 미리 파손시키는 것으로, 기술적 한계 때문에 자연파손을 100% 막지는 못하지만 사고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에서는 품질인증(CE마크)을 받으려면 강화유리를 시중에 내놓기 전에 열간유지시험을 거쳐야 한다. 이외에도 선진국에선 인체에 닿을 수 있는 곳이나 학교 건물 등에는 깨져도 파편이 튀지 않는 ‘접합유리’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출입문 등에 ‘안전유리’를 사용하도록 규정(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해 놓고도 정작 무엇이 안전유리인지는 정해 놓지 않은 국내의 안전기준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빈 라덴 사망…남는 의문점들
■ “경찰 수사팀인데…” 보이스피싱 당할뻔
■ 임신부, 비타민A 과다복용땐 기형아 위험↑
■ ‘가족끼리 소송전’ 통일교에 무슨일이…
■ [야! 한국사회] 민주당 이후를 생각함 / 진중권
■ 멀쩡한 차 땅에 묻고 도난신고…벤츠·포르셰 짜고친 추돌사고
■ 아이패드2 사용해보니…
■ “경찰 수사팀인데…” 보이스피싱 당할뻔
■ 임신부, 비타민A 과다복용땐 기형아 위험↑
■ ‘가족끼리 소송전’ 통일교에 무슨일이…
■ [야! 한국사회] 민주당 이후를 생각함 / 진중권
■ 멀쩡한 차 땅에 묻고 도난신고…벤츠·포르셰 짜고친 추돌사고
■ 아이패드2 사용해보니…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