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모범택시 연도별 차량수
전용 서비스 일반화 등 ‘고급택시’ 차별성 약화
어학공부·리무진 영업 등 경쟁력 높이기 자구노력
어학공부·리무진 영업 등 경쟁력 높이기 자구노력
안태진(68)씨는 서울에서 ‘95번째’ 모범택시 운전기사였다. 1980년 기아자동차 브리사로 개인택시 영업을 시작한 안씨는 1992년 현대자동차 쏘나타로 차를 바꿔 모범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당시 정부는 택시 선진화를 이루겠다며 모범택시를 도입했다. 신청 순서에 따라 받은 차량 번호는 ‘1095’였다. 모두 검은색에 영수증 발급기도 달려 있었다. 이듬해 여름, 대전 엑스포가 열리면서 운전에 흥이 실렸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분당·일산 등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시 외곽으로 가는 손님들이 늘었다. 차도 다이너스티로 ‘업그레이드’했다. “그때가 전성기였어. 한달 수입이 일반택시의 2~3배였지.”
그러나 몇년 뒤 불어닥친 외환위기를 겪은 뒤 업계 환경도 크게 바뀌어갔다. 택시 수가 급증하고, 콜 호출, 카드 결제 같은 모범택시 전용 서비스가 일반화됐다. 안씨는 2006년 다시 개인택시 운전기사가 됐다. “나이도 60대 중반이 되니 밤늦게 일하는 것도 무리였고, 10년 된 차를 바꿔야 하는데 차값이 너무 비싸더라고.”
서울 거리에서 모범택시를 찾기가 쉽지 않아졌다.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의 통계를 보면 1997년 5000대에 육박하던 모범택시는 2011년 5월 현재 1841대로 줄었다. 더러 건강 때문에 운전을 그만두는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벌이가 쉽지 않아 일반택시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서울시의 지난해 면허전환 때는 새로 모범택시로 옮긴 경우가 36대였던 반면, 모범에서 일반택시(중형)로 내려앉은 게 62대였다. 2006년까지 10년 동안 모범을 몰았던 한 개인택시 운전기사는 “경기도 안 좋고, 인천공항에 상주하며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콜밴이나 렌터카 불법 택시영업 등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일반택시로 내려오고 싶어하는 모범택시가 많다”고 했다.
모범택시 운전기사들은 주로 고급 호텔 앞이나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명동 등지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이들에겐 여전히 모범택시가 한국에서 제일 좋은 택시라는 자부심이 있다. 지난 13일 명동 인근에서 만난 모범택시 운전기사 고아무개(60)씨는 자신의 차를 타려던 외국인에게 ‘요금이 더 비싸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국내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 혹시 ‘바가지를 썼다’는 오해를 할까봐서다.
나름대로 자구책을 찾아나선 이들도 있다. 2001년부터 모범택시 운전을 시작한 유삼복(53)씨는 4년 전 차를 리무진으로 바꿨다. “리무진으로 바꾸니 외국계 업체나 대기업에 오는 해외 바이어 손님들이 생기더라구요.” 유씨는 매주 두 차례 밤마다 다른 운전기사들과 ‘중국어 스터디’도 한다. 역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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