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기능 폐지 소식을 접한 검찰은 ‘한번 해보자는 거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대검의 한 검사장급 간부는 “국회의원들이 중수부 수사권을 폐지할 순 있어도 검찰은 없애지 못한다”며 “어디 두고 보자”고 말했다. 또다른 간부는 “중수부 수사의 타깃은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대기업”이라며 “중수부가 폐지되면 국회의원들에게만 좋은 일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탓에 ‘당사자’인 중수부는 5일 사실상의 휴업에 들어갔다. 부산저축은행 수사가 3개월 가까이 이어진 탓에 피로감이 누적돼 잠시 숨을 고른다는 게 외형상 이유지만, 항의성 시위임을 굳이 감추지도 않는다. 수사팀의 한 검사는 “한창 수사를 진행중인 검찰 조직의 수사기능을 무력화한다는데, 솔직히 수사할 맛이 안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이 어떤 길을 걸을지는 내부 의견이 엇갈린다. 중수부 수사팀에선 ‘수사로 정면돌파하자’는 강경론과 ‘반발심리로 수사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온건론이 맞서고 있다. 수사팀의 한 검사는 “중수부의 존재 이유는 살아 있는 권력”이라며 “청와대든 국회의원이든 이번 수사에서 이름이 나온 인물들은 모두 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의 비리가 전면적으로 드러나면, 중수부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더 높아질 거라는 기대를 깔고 있다. 반면 수사팀의 또다른 검사는 “감정만으로 수사를 해선 안 된다”며 “힘은 빠지지만 지금 페이스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과의 정면충돌이 자칫 검찰의 조직이기주의로 비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검찰의 뒤숭숭한 분위기 탓에 당장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수부의 수사기능 폐지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피조사자가 ‘몇달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수사에 순순히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요 피의자에 대한 소환 일정이 차질을 빚기도 했다. 중수부는 은진수(50·구속) 전 감사원 감사위원에게서 이 그룹의 구명 로비를 받은 의혹을 사고 있는 김종창(63) 전 금융감독원장을 이날 불러 조사할 예정이었으나, 소환 일정을 연기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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