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6천명 명단·통화 20만건 분석 등 ‘저인망 조사’
영업정지 전날 2시간새 은행옆문으로 28억 ‘술술’
영업정지 전날 2시간새 은행옆문으로 28억 ‘술술’
“정치권과 금융당국 인사의 부당인출은 없었던 것을 확인했다.” 우병우 대검 수사기획관은 21일 부산저축은행그룹 계열 은행의 부당인출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정·관계 인사들의 이름은 없었다고 밝히면서 ‘확인했다’는 표현을 거듭 사용했다. 1차로 영업정지 방침을 정한 금융당국 간부들이 비밀을 누설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고, 실제 사전 인출자 명단에도 정·관계 인사들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 그룹 임원들이 일부 브이아이피(VIP) 예금자의 사전 인출을 도왔고, 이를 알게된 직원들도 가담했다는 게 검찰이 파헤친 부당인출 사건의 전말이다.
■ ‘정·관계 인사’ 사전인출설 실체 없다 이번 수사의 관심은 애초 정·관계 인사들이 사전에 영업정지 정보를 듣고 부당인출을 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 4월 <한겨레21>의 ‘부당인출’ 보도로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대검 중앙수사부는 같은 달 21일 검사 2명과 수사관 23명으로 전담수사팀을 꾸려 본격 수사를 개시했다. 검찰이 영업정지 전날인 2월16일에서 금융위원회의 영업정지 방침이 내부적으로 정해진 1월25일로 수사범위를 확대할 때만 해도 정·관계 인사들의 연루 정황을 포착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 4월 말부터 부산저축은행그룹 계열 은행 임직원 133명과 예금 인출자 978명을 조사하고, 이들의 통화내역 20여만건을 분석했다. 예금 인출자들의 가족관계를 조회한 뒤 1만6887명의 명단을 확보해 성인 1만4391명에 대한 직장 정보도 조회했다.
두달에 걸쳐 저인망식 수사를 펼친 검찰은 정·관계 인사의 부당인출은 없었다고 최종 결론을 냈다. 정창수(54) 전 국토해양부 차관과 고 임상규 순천대 총장을 제외하면 해당 기간에 돈을 빼간 인출자 명단 중 정·관계 인사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 전 차관과 임 전 총장은 사전에 돈을 빼긴 했지만 예금 인출 정황과 본인들의 설명을 종합한 결과 ‘정상적 인출’로 분류된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우병우 수사기획관은 “여러 의혹이 제기됐으나 특혜인출자 대부분은 부산지역 자영업자나 퇴직 교원 등이었다”고 설명했다.
■ 임원-VIP가 짜고 친 ‘부당인출’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영업정지 정보를 사전에 흘린 김양(59·구속 기소) 부산저축은행그룹 부회장 등 임원 3명은 영업정지가 임박한 상황에서도 평소 특수 관계를 유지해 온 브이아이피 고객들을 먼저 챙기느라 바빴다. 몇 퍼센트 이자라도 더 받으려고 한푼 두푼 어렵게 모은 돈을 믿고 맡긴 소액 예금자들은 안중에 없었던 셈이다.
영업정지 소식을 사전에 전해 들은 김양 부산저축은행그룹 부회장은 안아순(59·구속 기소) 부산저축은행 전무이사와 의논한 뒤 영업정지 전날인 2월16일 영업이 마감된 뒤인 오후 5시30분께, 거액을 예치해 특별 관리해오던 주요 법인고객 등 7명에게 은밀히 전화를 돌렸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오늘 중으로 예금을 인출해라. 마감이 됐어도 창구에 오면 별도 조처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들 예금주는 장학회와 부산지역 신용협동조합, 해운사 등이었다. 창구 담당직원에게는 “돈을 찾으러 오면 예금을 내주라”고 미리 일러둔 상태였다. 이들 예금주는 당일 오후 6시10분부터 8시35분 사이 현장에 파견 나온 금감원 감독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부산저축은행 본점과 지점 옆문으로 몰래 들어왔고 아무런 제지 없이 28억여원을 빼갈 수 있었다.
김정필 노현웅 기자 fermata@hani.co.kr
우병우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 기자실에서 부산저축은행 예금 부당인출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정필 노현웅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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