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보도연맹 대법 판단 의미
보도연맹 학살자 4934명
전국서 손배소 잇따를 듯
보도연맹 학살자 4934명
전국서 손배소 잇따를 듯
대법원이 30일 ‘울산 보도연맹’ 사건과 관련해 유족들의 소 제기가 가능한 시효를 폭넓게 인정함으로써, 다른 지역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의 보상을 받기가 한층 수월해지게 됐다. 울산 사건은 전국 보도연맹 사건 관련 손해배상 소송 가운데 처음으로 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것으로,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울산 사건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쟁점은 소멸시효였다. 국가의 불법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민법 제766조),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5년(예산회계법 제96조)이 지나면 소멸하게 된다. 국가는 그동안 울산 사건은 1950년에 발생했고 유족들은 유해 발굴 당시인 1960년 가해 사실을 알게 됐으므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손해배상 청구권이 유해발굴 당시로부터 3년이 경과한 1963년 시효 소멸됐고, 사건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5년이 경과한 1955년 시효가 끝났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전쟁 때엔 국가의 위법 행위에 대한 유족들의 정보 접근이 어렵다는 특수성을 인정했다. 이로 인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한 시점인 2007년 11월부터 손해배상 청구권의 시효가 시작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30일 “전시중에 경찰이나 군인이 저지른 위법 행위는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알기 어려워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며 “위난의 시기에 국가기관이 저지른 기본권 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날 울산 사건 판결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보도연맹 사건들의 소송도 탄력을 받게 됐다. 현재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진행중인 보도연맹 사건들은 쟁점이 전부 같아 그동안 법원이 울산 사건의 대법원 판결 이후로 판단을 미뤄왔다. ‘충북 청주·청원 보도연맹 사건’의 유족 조아무개씨 등 251명과 오아무개씨 등 237명이 제기한 소송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전국에 꾸려진 보도연맹 사건 유족회들이 울산 사건 판결이 나온 뒤 소송을 내겠다고 밝힌 터라 관련 소송이 속속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학계에선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가 5만~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학살된 것으로 규명한 보도연맹 연루자는 모두 4934명이다.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덕수의 김형태 변호사는 “전쟁중 양민학살 사건의 경우 진실화해위에서 결정난 사건 대부분이 패소했는데, 이번에 국가가 주장한 소멸시효가 배척된 판단이 나와 관련 소송들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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